中공산당 역사학자 "당이 항일승리 열쇠…만주사변 때부터 선봉"
'시진핑 브레인' 취칭산 "당이 국공합작도 제창…정치적 지도 핵심"
공산당 중심 '항일전쟁 역사 재구성' 가속화 시사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전승 80주년' 열병식을 계기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공산당 역할을 부각한 중국이 '시진핑의 브레인'으로 여겨지는 당 역사학자를 통해 공산당이 만주사변 직후부터 항일투쟁 최전선에서 싸웠다고 주장하며 '공산당 중심 서사'를 더욱 강조했다.
취칭산(曲靑山) 중국공산당 중앙당사(史)·문헌연구원장 겸 중국공산당사 학회장은 당 기관지 인민일보 8일자에 '중국인민 항일전쟁 승리 열쇠에 대한 역사의 깨우침'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중국공산당이 중류지주(中流砥柱·역경에 굴하지 않는 튼튼한 기둥) 역할을 한 것이 항일전쟁 승리의 열쇠였다"고 말했다.
취 원장은 "중국공산당은 중국인민이 일본 군국주의 침략에 항거한 최초의 선전자이자 동원자, 조직자, 반격자"였다며 1931년 일본 관동군이 만주 침략을 개시한 만주사변(9·18 사변) 발발 직후 동북군과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사태 확대를 피하고자 저항하지 않은 데 비해 공산당은 잇따라 항일투쟁 선언을 발표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 가장 위급한 시기에 중국공산당은 의연하고 결연하게 항일 민족 선봉이라는 중책을 맡아 주저 없이 항일 구국운동의 최전선에 나섰다"고 말했다.
취 원장은 이어 중국공산당이 이후 동북지역 항일 유격전을 이끌고, 1935년 12월 베이징 학생 중심으로 일어난 항일 시위인 '12·9 운동'을 일으키는 등 "국공양당 협력과 항일에 적극적 역할을 하고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서술은 당시 장제스 국민당 정부가 3차 공산당 토벌작전을 펼치던 중 만주사변이 일어나 작전이 중단됐고, 이에 공산당 홍군이 숨고를 틈을 얻었다는 일반적인 해석과 차이가 크다.
취 원장은 동북군을 이끌던 장쉐량이 장제스를 시안에서 구금한 '시안사건'(1936년)을 계기로 성사된 2차 국공합작(항일민족통일전선)과 그 이후의 항일투쟁과 관련해서도 공산당 역할을 부각했다.
그는 "중국공산당은 항일민족통일전선의 주창자이자 조직자, 공고자, 수호자로서 온 민족이 단결해 항전하는 데에 강력한 정치적 지도 핵심이었다"면서 "중국공산당이 개척한 광범위한 적 후방의 전장은 점차 항일전쟁의 주요 전장이 됐으며, 당이 이끄는 인민 항일 무장은 항전 승리 쟁취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 역시 공산당 토벌에 집중하던 장제스 때문에 수세에 몰렸던 공산당이 시안사건 덕분에 반전의 기회를 잡았고, 국공합작이 있기는 했지만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군보다는 장제스의 국민당군이 중일전쟁의 주역이었다는 기존 주류 역사 인식과 상반된다.
취 원장은 공산당 역사와 당장(黨章·당헌) 분야의 책임자로,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2기 출범을 알린 2017년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때 시 주석의 연설문 작성을 총괄해 '시진핑의 브레인'으로 불린 인물이다.
이를 고려하면 그의 이번 기고문은 자국 중심으로 항일전쟁사 재구성을 가속하고 있는 당국 의도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최근 수년 사이 항일전쟁 기간을 기존 루거우차오(盧溝橋) 사건(1937년)부터 8년이 아닌 만주사변 기점의 14년으로 바꾸고 중국 전장에서는 공산당군이 주축이었다는 식으로 역사서술을 바꿔왔다. 이런 흐름은 지난 3일 열병식을 전후로 강화됐다.
항일전쟁의 상당 부분이 당시 대륙을 석권했던 국민당의 힘으로 이뤄졌다는 종전 역사 인식을 부정하고,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하기 전부터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민족 부흥을 이끌었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역사 다시쓰기'로 중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질서를 주도했다고 주장함으로써 대만·남중국해 등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것인 동시에 과거·현재의 강대국이자 미래의 '초강대국'으로서 자국 서사를 구축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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