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실탄' 확보 나선 삼성SDI, 캐즘 위기에 유증 '승부수'
투자 여력 확보해 '슈퍼사이클' 대비…지난해 R&D 1.3조로 역대 최대
안정적 재무구조 구축 방침…주주 불만 달래기 등은 향후 과제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삼성SDI[006400]가 14일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한 것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에 따른 위기 상황에서도 선제적인 투자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실적 부진과 시장 불확실성 등의 악재가 이어지고 있지만, 공격적인 투자를 위한 자금 여력을 확보해 다가올 '슈퍼사이클'에 대비하겠다는 일종의 '승부수'인 셈이다.
다만 유상증자 이후 주가 변동성에 따른 주주들의 불만과 대내외 불확실성, 글로벌 경쟁 격화에 따른 불투명한 미래 전망 등은 넘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삼성SDI는 이날 공시에서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하는 자금의 활용처로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법인(JV) 투자, 유럽 헝가리 공장 생산능력(캐파) 확대, 전고체 배터리 생산라인 시설 투자 등을 언급했다.
이들 투자는 당장 가시적인 실적으로 나타나기는 어렵지만, 향후 글로벌 배터리 시장이 다시 상승 곡선을 탈 경우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앞서 삼성SDI는 지난해 8월 GM과 오는 2027년 양산을 목표로 35억달러(약 4조6천억원)를 투자해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하고 본계약을 체결했다
인디애나주 뉴칼라일에 들어설 합작법인은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기반 고성능 하이니켈 각형 배터리를 생산해 향후 출시될 GM 전기차에 탑재할 계획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예고한 상황에서 배터리 업계 안팎에서는 장기적으로 미국 현지에 생산 거점을 보유한 배터리 업체의 전략적 가치가 커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삼성SDI는 현재 미국 내 배터리 공장이 없기 때문에 GM과의 합작법인 투자를 차질 없이 진행해 향후 관세 정책에 대응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BMW와 아우디 등 유럽 완성차 제조사(OEM)를 주요 고객사로 둔 만큼 헝가리 공장의 캐파 확대도 불가피하다.
특히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의 경우 삼성SDI는 2027년 양산을 목표로 이미 2023년 파일럿 라인 구축을 마치고 지난해 고객사에 샘플을 공급하는 등 글로벌 업계에서도 기술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어 미래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최주선 삼성SDI 사장도 신년사에서 "기술이 희망"이라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을 선제적으로 발굴해 슈퍼사이클을 준비하고 올라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캐즘 장기화 우려에도 최근 시장조사기관들은 2025∼2030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연평균 20% 수준의 고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는 점도 유상증자를 결정하게 된 배경으로 해석된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의 폼팩터(형태) 가운데 삼성SDI가 주력하는 각형 배터리의 성장세가 상대적으로 더 가파를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도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삼성SDI는 최근 수년간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배터리 시장의 회복기에 대비해왔다.
2019년 1조7천억원대였던 시설투자 규모는 지난해 6조6천억원대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연구개발(R&D) 투자액은 역대 최대치인 1조3천억원으로 3년 연속 1조원을 넘겼으며, 국내 배터리 3사 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작년 4분기에는 7년 만에 첫 분기 적자를 기록하는 등 재무 지표가 악화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삼성SDI의 작년 한해 매출은 16조5천922억원, 영업이익은 3천633억원으로 전년보다 각각 22.6%, 76.5% 감소했다.
작년 말 미국 에너지부(DOE)의 대출 승인으로 대규모 자금을 확보했으나 이는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인 스타플러스에너지(SPE) 투자에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향후 다방면의 투자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유상증자를 통한 실탄 확보가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SDI는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일단 재무구조를 안정화하고, 이를 토대로 선제적인 투자에 나서 향후 두 자릿수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함과 동시에 외형적인 성장 노력도 지속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여전한 시장 불확실성과 중국 업체들의 추격에 더해 주주들의 반발 가능성 등은 향후 과제로 꼽힌다.
삼성SDI 주가는 작년 초만 하더라도 40만원대에서 움직였으나 최근에는 20만원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국내 증시의 평균 성적은 물론 국내 경쟁사에 비해서도 하락 폭이 커 주주 불만이 큰 상황이다.
여기에 지난 1월 말 "중장기 성장을 위한 시설 투자로 배당 재원인 잉여현금흐름의 적자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오는 2027년까지 3년간 현금 배당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도 주주들의 반발을 샀다.
이런 가운데 유상증자 이후 주가가 추가 하락할 경우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비판 목소리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상증자 결정을 공시한 이날 오전에는 장중 6%대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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