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이사회 누가 과반 차지할까…승부처는 '집중투표제'

입력 2025-01-20 10:05
고려아연 이사회 누가 과반 차지할까…승부처는 '집중투표제'

최윤범 회장 측 "3%룰로 집중투표제 가결" vs 영풍·MBK "부결되도록 주주 설득"

집중투표제 가결 시…지분율 뒤지는 최 회장 측 이사회 과반 확보 유리

부결시…영풍·MBK 연합, 3.3% 지지만 확보하면 과반



(서울=연합뉴스) 이슬기 기자 =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010130] 최윤범 회장 측과 영풍·MBK파트너스(이하 MBK) 연합이 23일 임시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벌인다. 이번 표 대결의 핵심은 '집중투표제'다.

투표권을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 통과 여부에 따라 고려아연 최 회장 측과 영풍·MBK 연합 중 어느 쪽이 이사회 과반을 차지할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집중투표제를 임시주총 의안으로 제안한 고려아연 최 회장 측은 우호 지분과 국민연금, 해외 기관투자자 지분 등을 총동원해 집중투표제 통과에 사활을 걸었다.

반면 영풍·MBK 연합은 집중투표제부터 저지한 뒤, 우세한 지분율을 기반으로 이사회 과반 확보를 노리고 있다.



◇ 고려아연, 열위 지분율 뒤집을 승부수로 '집중투표제' 카드

20일 재계에 따르면 집중투표제는 고려아연 최씨 일가의 사실상 가족회사인 유미개발의 제안으로 임시주총 첫 번째 안건이 됐다.

집중투표제는 주식 1주마다 이사 후보 수만큼의 의결권을 주고, 이사 후보 1명 또는 특정 몇 명에게 의결권을 집중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집중투표제가 통과되면 주주가 가진 투표권을 특정 후보에게 몰아주거나, 여러 후보에게 분산해서 행사할 수 있다. 이사는 최다 득표자 순서에 따라 선출된다.

이번 임시주총에서 이사 후보 수는 총 21명(고려아연 7명·MBK 14명 추천)이다. 주식 1주를 들고 있는 주주는 21개의 의결권을 본인이 지지하는 이사 후보들에게 자유롭게 분배해 투표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고려아연의 의결권 주식 기준으로 영풍·MBK 연합 지분율은 46.72%다. 고려아연(19.95%)과 우호 지분(19.21%)을 합하면 약 39.16%로 집계된다.

최씨 일가의 의결권 지분이 영풍·MBK 연합에 비해 7%포인트가량 적은 것이다.

고려아연은 이처럼 적은 지분율을 뒤집을 수 있는 승부수로 집중투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 집중투표제 가결 시 고려아연 과반 가능성↑…'3% 룰' 적용 유리

집중투표제가 가결된다면 이후 '이사 수 상한'(고려아연 제안)이 부결되고 이사 14명 임명건(영풍·MBK 제안)이 통과되더라도 고려아연이 이사회 과반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12명인 고려아연 이사회는 영풍 장형진 고문을 제외하면 11명이 고려아연 측이다.

최 회장 측이 집중투표제를 통해 최소 4명의 이사를 추가로 확보할 경우, 영풍·MBK 연합은 최대 10명의 이사를 확보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사회 구성은 최 회장 측 15명, 영풍·MBK 연합 11명이 되어 최 회장 측이 과반을 차지하게 된다는 계산이 깔렸다.

문제는 집중투표제가 정관 변경 사안인 만큼 3분의 2 이상의 특별 결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고려아연은 상법상 '3% 룰'을 적용해 집중투표제 가결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3% 룰이란 감사 선임 시 대주주가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3%까지만 인정하는 제도다. 정관 변경 시에도 대주주 감시를 위한 이사 선임 관련 투표에는 3% 룰이 적용될 수 있다.

보유 지분의 3%까지 캡을 씌우는 셈이어서, 3% 이상 지분을 가진 주주가 많은 영풍·MBK 연합 측에는 3% 룰이 불리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분석이 재계·증권 업계 안팎에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3% 캡을 씌우면 영풍·MBK 연합이 쓸 수 있는 지분이 적어지는 측면이 있다"며 "고려아연도 국민연금과 우호 세력 중 3%를 넘어가는 주주가 있어서 집중투표제 가결을 위해 기타 세력까지 모두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지난 17일 제1차 위원회를 열고 고려아연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 안건에 찬성표를 던지기로 결정한 바 있다.



◇ 집중투표제 부결 시 MBK 측 과반 유리

반면 집중투표제가 부결될 경우, 의결권 기준 46.72% 지분을 가진 영풍·MBK 연합이 이사회 과반을 차지할 확률이 높아진다.

영풍·MBK 연합이 기타 지분 등에서 약 3.3% 이상 지지만 받아도 원하는 이사 후보를 통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영풍·MBK 연합은 고려아연이 제안한 집중투표제(의안 1.01)와 이사 수 상한(의안 1.02)에 모두 반대하며 이사 14명 임명(의안 3.12)을 제안한 상태다.

MBK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이 발표된 이후 입장문을 내고 "이번 고려아연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가 도입된다면 소수 주주 보호라는 제도 본연의 취지는 몰각되고 최윤범 회장 자리보전 연장의 수단으로만 악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집중투표제 도입 시 1대 주주와 2대 주주 간 지배권 분쟁 국면은 장기화할 것이며 이와 같은 상황은 회사는 물론 주주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집중투표제 도입 정관 변경 의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국내외 기관투자자들과 일반 주주들의 설득에 더욱 집중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 글로벌 자문사 엇갈린 의견…경영권 분쟁 지속 리스크도

집중투표제 도입과 관련, 글로벌 양대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루이스와 ISS의 입장은 엇갈렸다.

글래스루이스는 보고서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이 이사회 구성에서 소수 주주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더 대표성 있는 이사회 구성을 촉진할 것"이라며 "해당 제안이 통과될 시 주주이익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된다"고 밝혔다.

반면 ISS는 "일반적으로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에게 유리한 제도지만 이번 경우에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현 경영진인 최윤범 회장 측이 지지하는 후보를 선임시킬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영풍·MBK가 추진하는 이사회 개편이 약화할 수 있다"며 집중투표제 도입에 반대 의견을 냈다.

현대차그룹과 한화그룹 등 고려아연의 우호 지분으로 분류되는 주주들이 집중투표제에 찬성표를 던질지도 관심사다. 그간 재계에서는 대주주의 지배구조를 약화할 수 있는 집중투표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아울러 이번 임시주총으로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 종식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고려아연과 MBK 모두 상당한 지분을 보유한 채 오는 3월 정기주총까지 힘겨루기를 이어갈 수 있다.

wis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