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선박법, MRO서 상선건조·수리로 협력 넓혀…한화오션 수혜
해상안보 위해 상선 250척 운용…국내업체들 수주기회 커질 듯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미국 의회가 자국 조선업 강화를 위해 한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높이는 법안을 최근 발의하면서 국내 조선업계에 다시 한번 훈풍이 불고 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선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협력 요청에 최대 수혜산업으로 떠올랐던 한국 조선업은 국내 산업계를 드리운 경기침체·탄핵 먹구름 속에서 가장 큰 기대를 받고 있다.
◇ 전략상선단 250척 운용이 핵심…해상안보 위해 상선역량 강화
23일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상원의 마크 켈리(민주·애리조나)와 토드 영(공화·인디애나) 의원, 하원의 존 가라멘디(민주·캘리포니아)와 트렌드 켈리(공화·미시시피) 의원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이른바 '선박법'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번영과 안보를 위한 조선업과 항만시설법'을 발의했다.
법안은 현재 미국으로 수입되는 재화의 2%만 미국 선적 상선(80척)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이러한 선박 수를 10년 내 250척으로 늘려 '전략상선단'을 운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박법은 표면적으로는 자국 상선 해운을 활성화해 미국 공급망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선박은 유사시 군수 화물 운송에 투입될 수 있어 법안이 중국에 밀린 해상안보 강화를 노리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와 관련, 미국 의회가 해군력을 증강하기 위해서는 상선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에 주목해 이러한 법안을 발의했다고 분석했다.
앞서 트럼프 2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된 마이크 왈츠 하원의원은 상선이 전투기 물자의 90%가량을 운송하는 만큼 해군에 더해 상선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고 언급했던 것과 같은 맥락인 셈이다.
FT는 "법안은 118대 의회가 이달 종료돼 자동 폐기될 가능성이 유력하지만, 조선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을 양당이 공유하고 있어 내년 회기에 재발의될 것"이라며 "재발의 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 상선건조로 韓과의 협력범위 넓혀…美선박 수리도 노려
한국 조선업계가 미국 선박법의 수혜를 받을 것이라는 전망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작용한다.
먼저 법안은 한국과 미국 간 조선업 협력 범위를 트럼프 당선인이 언급한 MRO에서 나아가 상선 건조까지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법안은 미국에서 건조된 선박만 전략 상선단으로 참가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 다만 선주가 미국 시민권을 가진 경우에는 외국에서 건조된 선박도 전략상선단을 신청할 수 있다.
현재 미국 조선소 20여곳에 발주된 상선 수주잔고가 29척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외국 건조 선박이 꼭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다만 선주 자격 요건을 충족하는 모든 외국 건조 선박이 전략상선단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법안은 '미국 정부는 조약 동맹 및 전략적 파트너와 함께 전시에 필요한 해상 수송 능력을 보강한다'. '교통부와 국방부 장관은 동맹과 파트너의 기여로 미국의 조선업을 강화할 방법을 의회에 권고한다' 등의 규정을 명시했는데 선박 건조국으로 동맹을 우선시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미국 동맹 중 상선 건조 능력을 갖춘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 유일한데 그러한 면에서 한국에게 기회가 되는 셈이다.
전략 상선단에 포함된 선박이나 선주에게 해외 수리비의 세금을 면제해주는 내용도 국내 조선업체들에는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미국 법은 무역에 사용된 미국 선적 선박을 외국에서 수리할 경우 수리비의 50%를 세금으로 내도록 한다.
선박법은 이 세율을 70%로 올리고, 중국 같은 우려 국가에서 수리할 경우 200%를 내도록 했다.
그러면서 전략상선단에 참가한 선박이나 선주가 미국에서 수리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한 경우 외국에서 수리해도 세금을 면제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한국이 전략상선단 소속 상선의 건조를 맡을 경우 수리 기회와 더불어 세금 면제 혜택도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아직 법안이 통과된 것이 아니라 파급효과를 예단할 수 없지만 한국 조선업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 국내 모든업체에 수주기회…한화오션, 가장 큰 수혜 예상
상선 건조에서도 미국과 협력의 길을 열리면서 이른바 '빅3'로 불리는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을 비롯해 국내 모든 조선업체는 수주 기회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인이 협력을 언급한 군함 MRO의 경우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을 획득하는 함정정비협약(MSRA)을 선제적으로 체결해야 하지만 상선 수주는 모든 업체에 기회가 열려있기 때문이다.
특히 상선 분야는 한국의 최대 경쟁국 중국의 물량 공세에도 한국이 30∼40% 수주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선주들이 당장 내년부터 전략상선단 참가 기한인 2029년까지의 납기를 조건으로 한국 조선업체에 상선 발주를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업체 중에서는 한화오션이 이러한 선박법의 혜택을 가장 크게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화오션은 최근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 조선소를 인수했는데 국내업체가 미국 조선소를 인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필리 조선소는 연안 운송용 상선을 전문적으로 건조하고, 석유화학제품운반선(PC선), 컨테이너선 등 미국 존스법이 적용되는 대형 상선의 50%가량을 공급해왔다.
아울러 미국은 외국 업체가 미국 내 상선 및 군함 조선소, 기자재 업체 등에 투자할 경우 이를 적격투자로 분류해 금융이나 고용 지원 등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이에 따라 HD한국조선해양도 미국 내 조선소 매물을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vivi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