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외교 해결사' 그레넬 역할 주목…북미대화 첨병 맡나

입력 2024-12-15 11:48
트럼프의 '외교 해결사' 그레넬 역할 주목…북미대화 첨병 맡나

'김정은 등 적성국 정상과 대화 필요' 신조 트럼프와 공유

우크라戰 종식 진전과 함께 북미외교 공간 열리면 적극 나설 듯

트럼프 북미대화 의지 '모락'…탄핵소추 국면서 한미대북조율 중요해져



(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4일(현지시간) 리처드 그레넬 전 주독대사를 일종의 '외교 리베로'로 발탁한 것은 트럼프 집권 2기 북미대화와 관련한 함의가 작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레넬의 직책을 '특별임무들을 위한 대통령 사절'(Presidential Envoy for Special Missions)로 규정하고, "베네수엘라와 북한을 포함한 전세계 가장 뜨거운" 이슈들을 맡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축구에서 공수 등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는 '리베로'처럼 활동하며 트럼프가 처리해야 할 골치 아픈 외교 임무를 수행하는 '해결사' 역할을 맡긴다는 취지인데, 특별히 '북한 임무'를 거론한 것이 눈에 띈다.

우선 주목되는 것은 그레넬이 트럼프 측근 그룹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다.

직업 외교관 출신인 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인 2001∼2008년 유엔 주재 미국대표부에서 공보·공공외교를 맡았고,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세르비아-코소보 평화협상 대통령 특사와 주독대사, 국가정보국(DNI) 국장 대행 등을 역임하며 트럼프의 눈에 들었다.

트럼프 2기 국무장관 후보로 결국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지명됐지만 그레넬은 국무장관 유력 후보로도 거론됐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 전문성과 트럼프 당선인과의 인식 공유 폭, 오랜 기간 검증된 충성도 등은 루비오 지명자를 능가한다는 것이 중평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그런 그레넬을 '폼나는' 국무장관 자리에 쓰지 않고 별도 '리베로' 성격 자리에 기용하면서 북한을 업무 영역으로 거론한 것은 북미대화의 여지가 보이면 그를 적극 활용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후보시절을 포함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브로맨스'를 자랑하며 북미정상외교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시사해왔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12일 보도된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뷰에서 "난 김정은을 안다. 난 김정은과 매우 잘 지낸다. 난 아마 그가 제대로 상대한 유일한 사람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런 만큼 3차례 북미정상회담 또는 회동이 열린 트럼프 집권 1기 때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이 맡았던 북미대화의 중량급 첨병 역할을 그레넬에게 맡기려는 의중이 읽힌다.



여기서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그레넬의 성향이다.

북한 등 적성 국가에 대한 그의 외교관은 그가 지난 7월 공화당 전당대회(밀워키) 계기에 열린 행사 때 한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당시 '트럼프 2기' 출범 시 외교 방향에 대해 "누가 그 나라 정상인지는 그(트럼프)에게 중요하지 않으며, 그는 미국을 위해 관여(외교)를 하고, 투쟁한다"며 "우리는 위대한 양자관계를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레넬은 이어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타국의 정권교체를 시도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의 경우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지도자라고 할 수 있었다"며 "(트럼프는) '내가 그와 대화하면 어떨까. 그와 관여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레넬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중 김정은 위원장과 3차례 만난 데 대해 "김정은을 승인한 것이 아니라 김정은이 이웃을 위협하고 있고, 미국의 이익을 위협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에 따른 것이었다"고 소개한 뒤 "나는 트럼프가 그 사람(김정은)과 관여했다는 사실을 사랑했다. 그것이 트럼프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당시 그레넬의 발언은 트럼프 당선인이 백악관에 복귀할 경우 상황에 따라 북한과 다시 정상외교를 추진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들렸다.

결국 트럼프 당선인이 자신과 대북 외교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측근인 그레넬을 기용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을 향한 메시지의 의미가 없지 않아 보인다.

비록 김 위원장이 최근 북미대화에 관심이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고, 우크라이나전쟁을 계기로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 중인 러시아와 북한이 동맹관계를 맺은 상황이라 트럼프 당선인이 원하더라도 북미대화가 조기에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우크라이나전쟁 조기 종식 목표에 진전이 이뤄지는 등 국제정세상 '기회의 창'이 열리면 자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북한에 외교적 관여를 시도할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트럼프로서는 자국민에게 대북외교에 나설 명분으로 설명할 소재들이 많아졌다는 것이 외교가의 평가다.

집권 1기 때보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역량은 양과 질면에서 모두 크게 진보했고,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하고 미사일과 포탄을 대량 제공한 대가로 받기를 원할 것으로 보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 기술 등은 미국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외교적 관여의 틈이 열리면 그레넬은 최근 국가안보 부보좌관으로 지명된 트럼프 1기 대북외교 실무자 알렉스 웡 전 국무부 대북특별 부대표와 함께 대북외교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인이 2기 외교안보 라인에 대북 외교 관련 요인들을 잇달아 포진시킴에 따라 한국의 탄핵소추에 따른 대통령 직무 정지 및 권한대행 국면에서 한국 외교의 당면 과제는 더 무거워지는 양상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북미대화에 대한 관심을 분명히 보이는 만큼 대북정책과 관련한 '한국 패싱'을 막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와의 대북정책 소통선을 확보할 필요성은 더 커지게 됐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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