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트럼프 2.0과 한국의 계엄 사태
(워싱턴=연합뉴스) 강병철 특파원 =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린 미국에서는 '대위기(The Crisis) 시대'를 거치면서 미국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퇴행적 흐름이 나타난다.
전국적으로 아시아계 미국인을 겨냥한 폭력 등이 빈발하는 가운데 의회에서는 '미국 문화와 전통 보존법'(PACT)이 처리된다. 이에 따라 비(非)미국적으로 간주하는 가정은 해체되고 아이들은 위탁 가정으로 보내진다.
셀레스트 응의 2022년 책 '아우어 미싱 하트'(Our missing hearts)는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가상의 미국을 배경으로 엄마를 찾는 아이의 여정을 담고 있다.
영화 배우 리즈 위더스푼의 북클럽 '헬로 선샤인'에서 추천 도서로 선정하기도 한 이 책에는 트럼프 1기 정부의 반(反)이민 정책이나 코로나19 사태 당시의 아시아 혐오 등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러나 책은 작가가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미국 상황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란 느낌을 준다. 실제 미국 언론 인터뷰 등을 보면 2016년 처음 기획된 이 책의 서사나 분위기가 트럼프 1기를 거치면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책의 서평 제목을 '셀레스트 응의 디스토피아는 불편할 정도로 현실에 근접해 있다'로 달았다. 실제 책에는 길 가던 아시아인이 중국인으로 오해받아 '묻지마 폭력'의 피해를 당하는 등 뉴스에서 본 듯한 장면이 배경으로 나온다.
이 책은 미국 역사에서 흘러간 물인 줄 알았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년 1월 복귀하게 되면서 미래에 대한 함의도 갖게 됐다.
코로나19를 '차이나(중국) 바이러스'로 부르면서 사실상 아시안 혐오를 선동했던 트럼프 당선인이 이번에는 불법 이민자에 대해 "미국의 피를 오염시키고 있다"면서 대규모 추방을 다짐하고 있어서다.
1기 때 '불법 이민자 가족 분리 정책'으로 비판을 받았던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에는 더 많은 이산가족을 만들 수 있는 초강경 정책 시행을 예고하고 있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불법 이민자 추방을 예고하면서 미국에서 태어나 합법적 체류 신분을 가진 불법 이민자의 자녀에 대해서도 '가족과 같이 추방되든지 떨어져 살든지'를 선택할 것을 사실상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8일 공개된 NBC 인터뷰에서 "나는 가족을 해체하고 싶지 않다. 유일한 방법은 함께 송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합법적인 거주자인 자녀도 추방하느냐는 후속 질문에 "그들이 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대대적인 불법 이민자 단속 및 추방 정책과는 별개로 합법적 미국인에 대한 트럼프 당선인의 이런 입장은 현실화할 경우 법원에서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국적을 갖고 있는 아이가 자신의 부모가 불법 이민자라는 이유로 법적인 처벌을 받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트럼프 당선인이 불법 이민자 단속 등에 군을 동원하겠다는 것도 위법 소지가 있다는 게 미국 언론 평가다. 내란법 등 일부 '구멍'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 연방 법에서는 미국 내 법 집행에 군을 동원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한 논란성 정책은 불법 이민자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복귀를 불안한 시각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2.0'에 대한 이런 우려는 최근 한국에서 계엄 사태가 발생했을 때 미국 언론 등이 비상한 관심을 보인 배경 중 하나로도 거론된다.
이와 관련, 현지의 한 지인은 지난 3일(현지시간) 한국의 계엄령 해제 직후 필자의 한국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이어진 문자 메시지에서 "한국인은 오늘 민주주의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가꾸고 지켜야 하는 연약한 것처럼 행동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평가는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한 것이었지만, 트럼프 2.0을 앞둔 미국인의 다짐도 같이 담겼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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