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오늘 하루 한국을 체험해요"…아르헨 한인축제에 7만명 운집
한복·한식 체험 큰 인기…K드라마·K팝 그룹 소개하며 '한류사랑' 과시하기도
50대 교민 "이민 왔을 때 현지인이 한국어 배우고 김치 먹는 것 상상도 못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온 가족이 K-드라마 팬이라서 몇 년 전부터 꼭 '한인의 날' 행사를 꼭 챙겨요. 오늘은 남편과 같이 한복도 입고 사진도 찍어서 더 특별한 날이예요."
한국 드라마의 열렬한 팬이라는 클라우디아(47)는 남편 산드로(50)와 같이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연신 웃으면서 딸인 브리사(27)의 지시대로 카메라를 보면서 포즈를 취했다.
요새 드라마 '지금 거신 전화는'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는 클라우디아 옆에서 딸은 '엽기적인 그녀'하고 '미스터 션샤인'도 봤다고 덧붙였다.
K-팝도 듣느냐는 질문에 클라우디아는 "난 아미(BTS 팬)인데!"라면서 웃었다.
남편인 산드로는 부인과 딸이 집 TV에 한국 드라마만 틀어놓아서 같이 본다면서 처음 입어본 한복을 입고 매우 즐거워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허파라고 할 수 있는 팔레르모 공원에서 2024년 '한인의 날' 문화 축제 '하루 페스트'가 9일(현지시간) 개최됐다.
미국 뉴욕에 센트럴 파크가 있다면, '남미의 파리'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여러 개의 공원으로 이루어진 총 370㏊(112만평) 규모의 팔레르모 공원이 있는데, 이 중 하나에서 이날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페스티벌이 현지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참여 속에 진행됐다.
작년엔 대선 및 총선으로 해마다 열리는 '한인의 날' 행사가 개최되지 않아 아쉬움이 컸던지, 올해는 기상 예보로 행사 날짜가 두 번이나 변경되고 행사 장소 또한 변경되는 악조건 속에서도 한인회 추산 7만명 이상의 시민이 모여 한국 문화를 만끽했다.
아르헨티나의 힘든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은 한인회를 주축으로 이번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뭉쳤다.
교민 소매상 단톡방에서는 소액 지원 운동까지 하면서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을 했고, 지방에 거주해 행사에 참석할 수 없는 한인들도 작게나마 힘을 보태면서 끈끈한 한국인의 정을 보여줬다고 주최측은 밝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오늘 하루 한국 문화를 체험하자'라는 이번 행사 주제에 맞게 이날 행사장에는 떡볶이, 소떡소떡, 김밥, 빈대떡, 불고기 등을 맛볼 수 있는 한식 부스와 한복 체험, K-팝 기념품 및 한국어 교재 판매 등 40여개의 다양한 부스가 마련됐다.
현지인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것은 '한식'과 '한복 체험'이었다.
김밥 한 줄에 5천페소(7천원), 떡볶이 1만페소(1만4천원) 등 적은 양에 비해 가격이 싸지 않다고 느껴졌음에도 불구하고 한식을 맛보려는 현지인들이 부스로 대거 몰려들었다.
길게 늘어선 줄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소떡소떡 구매에 '성공'한 아리아드나(19)와 다이아나(30) 자매는 "K-드라마 팬이라서 소떡소떡이 뭔지 안다"며" 이것 외에도 양념치킨과 한국식 디저트도 먹을 생각이다"라며 웃었다.
동생은 NCT 드림 팬이고 언니인 다이아나는 샤이니 팬이라면서 이민호 주연의 더킹과 '엄마친구아들'을 재밌게 봤다고 했다.
팥빙수, 김밥, 잡채 등을 파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상호의 한식 부스도 눈에 띄었다.
아르헨티나 외신기자협회의 글로리아 베레테르비데 집행 이사는 "많은 외국 교민 단체 행사에 취재차 참석했지만, 참가자들이 손꼽아 기다리면서 K-문화 체험을 즐기기 위해 왔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며 "인터뷰하는 시민마다 K-드라마 제목을 줄줄이 읊어대고 K-팝 그룹 얘기를 하며 한식을 능숙하게 먹는 게 충격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K-문화가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핫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내 상상 이상이다"라면서 K-뷰티 부스가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한국문화원은 별도의 부스에서 한국 관광안내 책자, 김치 소개 및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작품을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마리아(24)는 "여기서 한국어 교재를 판다고 해서 남자친구가 방금 사줬다"며 "아직 초보 단계이지만, 교재를 구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고 웃었다.
근교에서 가족과 함께 왔다는 50대 김모 씨는 "내가 이민 왔던 80년대 후반에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김치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는데, 너무나도 뿌듯하다"고 말했다.
sunniek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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