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칼 흩날려도 죄인가"…이란 '정권 디스' 래퍼 2년만에 석방

입력 2024-12-03 11:45
"머리칼 흩날려도 죄인가"…이란 '정권 디스' 래퍼 2년만에 석방

투마즈 살레히, 753일 만에 풀려나…6월 대법원서 사형선고 파기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며 정권에 저항해온 유명 래퍼가 옥중 투쟁 끝에 석방됐다고 미국 CNN 방송 등 외신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투마즈 살레히(32)는 이날 이란 이스파한의 한 교도소에서 풀려났다. 2년 전부터 투옥과 석방을 되풀이하며 총 753일에 걸쳐 옥살이한 끝에 살레히는 자유의 몸이 됐다.

그의 수난사는 2022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살레히는 당시 이란 전역을 휩쓴 이른바 '히잡 시위'에 참가해 정권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그는 직접 거리에 나서 여성 인권 지지를 외치는 한편 "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춤을 췄다는 게 누군가에겐 죄, 용감하고 솔직하다는 것도 누군가에겐 죄"라는 가사의 랩을 발표하며 저항 물결의 중심에 섰다.

히잡 시위는 앞서 2022년 9월 테헤란 도심에서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20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순찰대에 체포됐다가 의문사한 것이 불씨가 돼 이란 곳곳에서 정권을 규탄하고 여성 인권을 지지하는 거리 집회가 이어진 것을 뜻한다.

이란 당국은 이 시위를 서방 세력이 조장한 폭동으로 규정해 강경 진압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최소 500명이 숨지고 2만여명이 체포됐다.

살레히는 정부의 폭력적 시위 진압을 비판하는 노래를 냈다는 이유로 '모프세데 펠아즈'(신을 적대하고 세상에 부패와 패륜을 유포한 죄)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으며, 이듬해인 2023년 7월 징역 6년 3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한 살레히는 대법원에서 원심 파기 환송 판결을 받아내 4개월 뒤 풀려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그해 12월 살레히는 자신이 체포됐을 당시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영상 메시지를 공개했다가 허위사실 유포와 폭력 조장 등의 혐의로 다시 체포된 이후 올해 4월 사형 선고를 받았다.

사형 선고 때에는 중형이 내려지는 '지상 부패 확산'(Corruption on earth)이라는 죄목이 적용됐다.

이란 대법원이 그러나 지난 6월 하급심을 깨고 재심을 명령하면서 사형선고를 뒤집었고, 살레이는 약 6개월 만인 이날 석방됐다.

살레히는 이날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에서 지지자들에게 "지난 2년 동안 저를 위해 놀랍고 영광스러우며 믿을 수 없는 일들을 해주셨다"며 감사를 표했다.

살레히가 풀려나기까지는 영국의 변호사 단체인 '도티 스트리트 체임버스'(Doughty Street Chambers) 등 인권 단체의 지원이 컸다.

그의 가족들은 석방 이후라도 계속 경계해야 한다면서 감옥 밖에서도 살레히의 자유와 안전에 관심을 멈추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newgla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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