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서 "유대인 사냥가자"…유럽 한복판에서 반유대 폭력

입력 2024-11-09 10:10
텔레그램서 "유대인 사냥가자"…유럽 한복판에서 반유대 폭력

암스테르담서 이스라엘 축구 팬 봉변…"스쿠터로 추격하며 집단 폭행"

5명 부상·60여명 체포…유럽 반유대주의 '위험 수위' 경고등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8일(현지시간) 새벽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이스라엘 축구 팬들을 겨냥한 폭력 사태가 벌어지면서 최근 유럽 내에서 커지고 있는 반유대주의 움직임이 위험 수위를 넘겼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날 영국 BBC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7일 암스테르담 요한 크라위프 아레나에서 열린 네덜란드 축구팀 아약스와 이스라엘 마카비 텔아비브 간 유로파리그(UEL) 경기가 끝난 뒤 도시 곳곳에서 원정 온 이스라엘 축구 팬들이 공격당했다.



당국에 따르면 7일 밤부터 8일 새벽에 걸쳐 신원 불명의 젊은이들이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니며 도시 내 이스라엘 축구 팬들에게 뺑소니를 가했으며, 바닥에 쓰러진 이스라엘인을 집단 구타하거나 폭죽을 눈앞에서 터뜨리며 공격했다.

택시 차량 여러 대도 함께 움직이며 공격 대상을 몰아세우는 등 공격에 가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BBC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확산한 영상 중에는 길에 넘어진 한 남성을 여러 명이 발로 차고 구타하는 장면이 있었으며, 다른 영상에서는 차량 한 대가 누군가를 치고 지나가는 장면이 담겼다고 전했다.

확인되지 않은 일부 영상에서는 사람들이 친팔레스타인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담겼다.



당시 현장에 있던 영국인 관광객 두 명은 BBC에 사람들에 의해 공격당하는 이스라엘인을 도와주려다 자신들도 공격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BBC에 한 남성을 "10명의 사람이 발로 밟고 차고 있었다"면서 "작은 패거리들이 사람들을 추격하는" 것을 봤다고 전했다.

이날 경기를 관람한 마카비 텔아비브 팬 사이브 바라자니(24)는 경기가 끝난 7일 밤 11시 30분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신과 이스라엘 축구 팬들을 공격해왔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그는 길에 넘어진 뒤 머리가 발로 밟혔으며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고 외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 다른 이스라엘 팬은 얼굴을 주먹으로 맞았으며, 다른 이는 열쇠로 얼굴이 긁혀 피를 흘리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바라자니는 "나는 내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모두가 미친 듯이 달아나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주변 무리와 함께 가까스로 빠져나와 인근 패스트푸드 매장에 몸을 숨겼으며, 이튿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날 암스테르담 곳곳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로 최소 5명이 다쳐 입원했으며 60명 이상이 연행됐다.



당국은 이번 사태를 명백한 반유대주의 공격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규탄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텔레그램에서는 암스테르담에서 유대인을 겨냥한 공격을 선동하는 메시지가 확산한 것으로 조사됐다.

펨커 할세마 암스테르담 시장은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사람들이 유대인을 사냥하러 가자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이후 텔레그램 측은 성명을 내고 이날 사태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채팅방을 폐쇄했다고 밝혔다.

이번 폭력 사태에 앞서 암스테르담에서는 이미 이스라엘 축구 팬들과 친팔레스타인 세력 간 충돌이 여러 차례 발생하며 갈등이 고조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당국은 경기 전날 밤에도 마카비 텔아비브 팬과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연루된 충돌 사태가 여러 차례 있었으며 양측 세력 모두 폭력에 가담했다고 밝혔다.

당시 이스라엘 축구 팬들은 건물 벽면에 걸린 팔레스타인 국기를 내리고 불을 붙였으며, 택시 한 대를 공격했다고 당국은 밝혔다.

이에 암스테르담 당국은 7일 밤 축구 경기를 앞두고 시내 곳곳에 경찰 병력 배치를 늘리고 경기장 인근에서 예정되어 있던 친팔레스타인 시위를 금지하는 등 대비에 나선 상태였다.



유럽 수도 한복판에서 벌어진 반유대주의 폭력 사태에 최근 수년 사이 유럽 내에서 확산하고 있는 반유대주의 정서가 극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몇몇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날 공격이 과거 나치 독일에서 있었던 유대인 약탈 사건인 '수정의 밤'(11월 9∼10일)을 앞두고 벌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WSJ에 따르면 2023년 독일에서 유대인을 겨냥한 온라인 괴롭힘과 신체적 공격 등 관련 사건은 전년도에 비해 80% 가량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7월 발간된 유럽연합(EU)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내 유대인 커뮤니티들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 공격 이후 유럽 내에서 반유대주의 행동이 5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WSJ은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유럽의 주요 도시들에서 거의 매주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을 비판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어 당국이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비판과 반유대주의 간에 명확한 선을 긋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짚었다.

한편 이날 폭력 사태 이후 암스테르담 당국은 이번 주말까지 사흘간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열리는 모든 시위를 금지했다.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은 "우리의 역사는 이러한 위협이 어떻게 점점 더 나빠지는 지를 가르쳐줬다"면서 과거 나치 독일에 의해 네덜란드의 유대인 4분의 3 이상이 숨졌던 역사를 상기시켰다.

그는 이러한 "반유대주의 행동"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면서 네덜란드 내에 모든 유대인들이 안전하다고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wisef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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