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성공 비결? 고객과 '윈윈'하는 경영 철학…삼성도 배워야"
린훙원 대만 금주간 고문 인터뷰…"삼성, 고객 신뢰 확보 위해 전략 수정해야"
트럼프 재집권에 "TSMC 역할 더 중요해질 것"…"AI 비즈니스 기회 포착 중요 과제"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산업에 '나만의 제품'이란 없습니다. 고객이 성공해야만 TSMC도 성공할 수 있죠. 따라서 TSMC는 고객의 신뢰를 얻어 수주를 따내려고 노력합니다."
글로벌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를 30여년간 근거리에서 취재해 온 린훙원(林宏文) 대만 금주간(今周刊) 고문은 최근 연합뉴스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TSMC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기업과 고객이 함께 윈윈하는 경영 철학'을 꼽았다.
린 고문은 "TSMC는 제조업을 마치 서비스업처럼, 위탁공장을 마치 고객 자신의 공장인 것처럼 또는 그보다 더 나은 조건으로 운영해 고객이 큰돈을 투자해 공장을 지을 필요 없이 TSMC에 일을 맡기는 게 낫다고 여기도록 한다"고 말했다.
린 고문은 하이테크 전문 저널리스트로, 언론계에 발을 내디딘 첫해에 장중머우(張忠謀·모리스 창) TSMC 창업자와 인터뷰하는 등 수십년간 TSMC를 움직이는 유력 인사들을 취재해 온 TSMC 전문가다.
그는 "1990년대부터 전세계 반도체 업계는 '수직적 통합'에서 '수직적 분업'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제품 설계와 제조를 모두 담당하던 종합반도체기업(IDM)이 IC 설계와 파운드리로 나뉜 분업 모델로 바뀐 것"이라며 "장중머우 창업자가 이런 추세를 파악해 파운드리 비즈니스 모델을 처음 만들어냈고, 패러다임 전환의 기회를 포착해 지금껏 성장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TSMC는 약속한 것은 반드시 이뤄내는 '책임경영'을 실천한다"며 "고객을 위한 서비스에 진심이며 재고가 없을 때는 고객에게 삼성과 같은 경쟁 상대를 소개해주는 이 모든 것이 TSMC의 기업문화를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최근 '삼성전자 위기론'에 대해서는 "삼성은 많은 사업 영역에서 고객과 경쟁 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이로 인해 고객 신뢰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며 "따라서 산업에 지각변동이 생길 때면 삼성이 직면해야 하는 도전 역시 많아진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고객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고민해야 하고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오늘날 산업 경쟁 환경이 '혼자만 잘 사는' 패러다임에서 '다함께 잘사는' 패러다임으로 변화하고 '동맹'이 트렌드가 된 만큼 이에 대비해 삼성도 변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파운드리에서 고전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최근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파운드리 투자 규모를 축소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에서 TSMC와 협력할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오늘날 삼성이 적잖은 위기에 봉착한 요인으로는 중국의 굴기(堀起)와 인공지능(AI)의 빠른 성장 등을 꼽았다.
그는 "이건희 선대회장 별세 이후 이 회장이 경영에 나섰지만 미중 갈등, 코로나19, 공급망 파동,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맞물렸고 이 회장 스스로도 각종 의혹과 소송에 휘말려 삼성 내부의 주요 결정이 늦어지고 회사 전반의 전략 밸런스에 문제가 생겨났다"고 진단했다.
이어 "2019년 일본의 수출 통제로 당시 삼성의 생산 수율은 큰 타격을 입었다. 이는 수율 저하와 첨단공정의 개발 지연, TSMC와의 격차 확대라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삼성은 이러한 도전에 맞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장중머우 창업자가 "삼성전자는 '강력한'(formidable) 경쟁상대"라고 말한 점을 언급하면서 "그가 삼성 외 다른 경쟁상대에게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설령 현재 삼성이 도전에 직면했다 하더라도 누구도 삼성의 실력을 가볍게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린 고문은 "다만 삼성이 TSMC로부터 배울 점은 기업 문화"라며 "고객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신, 고객과의 윈윈을 추구하는 경영철학, 주인 정신으로 무장한 직원들, 이러한 기업문화는 삼성이 충분히 참고하고 배울 만하다"고 조언했다.
TSMC 직원들의 '주인 정신'의 한 예로 일본의 한 자동화 설비 제공업체 담당자가 전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예전에 (담당자가) TSMC를 방문해 자사 제품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직원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제품에 관심을 보였고 결국 매니저가 강제 해산시켰다고 한다"며 "반면 인텔이나 삼성, 다른 일본 회사를 방문했을 때는 다들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제품 소개를 마치자 바로 흩어졌다고 한다"고 전했다.
최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며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강화되고 미중 갈등도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린 고문은 이에 대해 "현재 인텔은 불황에 처해 있으며 첨단 공정 개발이 순조롭지 않아 TSMC에 대한 의존이 절실하기 때문에 TSMC의 역할은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TSMC와 삼성처럼 미국에 투자한 외국기업이 모두 미국을 돕고 있는 만큼 이에 상응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트럼프는 선거 전 'TSMC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고 언급했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TSMC는 많은 미국인을 위해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해야 맞다"며 "TSMC의 고객 3분의 2가 미국 기업이며, 애플과 엔비디아, 브로드컴, 퀄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기업을 위해 가장 우수하고 저렴한 칩을 생산한다"고 덧붙였다.
린 고문은 "(TSMC가 있기 때문에) 미국인은 힘든 웨이퍼 제조 작업에 투입될 필요가 없다"며 "미국은 인재, 자금, 자원을 신제품 설계와 신기술 개발에 쏟아 세계 산업 트렌드·규격의 선도적 지위를 유지하고 가치사슬(밸류체인)의 최상위를 선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AI 시장 확대에 대해서는 "AI 발전의 3대 요소는 계산력, 알고리즘, 데이터인데 이 3개 영역에서 각국의 특성이 다르다"며 "대만은 계산력에 강하지만 알고리즘에 약하고, 미국은 알고리즘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한국은 3개 영역 모두 고루 발전해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AI가 향후 10년, 20년간 지속적으로 발전한다면 AI는 모든 기업과 국가가 잘 검토해야 할 전략 분야가 될 것"이라며 "이 3개 영역에서의 비즈니스 기회 포착은 향후 모든 기업과 국가의 중요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린 고문은 조만간 방한해 오는 14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 주최로 열리는 '제1회 미래경제포럼'에 연사로 나서 TSMC에 얽힌 각종 이야기와 빅테크 간 경쟁 구도를 풀어낼 예정이다. 'TSMC, 세계 1위의 비밀'(생각의힘) 출간도 앞두고 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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