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집권] 시험대 오른 유럽 방위비…'단합된 대응'은 의문
더 거세진 '방위비 증액 압박' 직면…'안보 자립' 목소리도
NYT "프랑스·독일 등 국내문제로 유럽 차원 연대 대응 어려울 수도"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의 방위비 분담 문제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집권 1기 때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외교의 핵심 축인 동맹국과의 관계에서 가치나 노선보다는 돈 문제를 우선시해,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 상대방도 그에 상응한 부담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미국이 주도해온 서방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관련해서는 유럽 선진국들의 방위비 지출이 저조하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나토 탈퇴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첫 임기보다 더 강력한 미국 중심 정책을 예고한 만큼 나토 동맹국들을 향한 방위비 증액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7일(현지시간) 트럼프 재집권으로 유럽 동맹국들이 연대를 유지하고 자국 군대를 구축하며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 능력을 시험받게 될 것이라며, 안보 측면에서 나토 탈퇴 위협과 관련한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영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유럽 수석고문 프랑수아 하이스부르는 NYT에 "(집단방위를 약속한) 나토 조약 5조가 조폭의 보호비 갈취(protection racket)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게 트럼프의 입장이다. 그리고 그는 집권 1기 때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토 동맹국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유럽 '안보 무임승차론'을 꺼내 들 가능성에 대비해 방위비 지출 증가를 강조하며 미국 행정부와 첫 단추를 잘 끼우려 노력하는 모습이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유럽 회원국들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면서 나토 회원들이 현재 2%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지출 비율을 3%까지 올릴 것을 요구했다.
마르크 뤼터 사무총장은 이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에 앞서 유럽 회원국들이 방위비를 더 많이 내야 한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말했다.
뤼터 사무총장은 북러 군사협력 등 위협과 관련해 "트럼프 당선인과 함께 어떻게 공동 대응할지 논의하기를 기대한다"면서 "(대응의) 한 부분은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이 (방위비를) 더 많이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전적으로 그(트럼프)의 말이 옳다"고 강조했다.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은 트럼프 당선인의 안보 고문들과 정기적으로 연락하고 있다면서 "유럽은 방위비를 늘려 안보에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폴란드는 GDP 대비 4% 이상을 방위비로 지출하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유럽연합(EU) 국방·우주 담당 집행위원으로 지명된 안드리우스 쿠빌리우스도 전날 유럽의회 인준 청문회에서 나토가 방위비 지출 목표를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쿠빌리우스는 "나토에 (방위비 지출) 2% 목표가 충분한지 논의하도록 요청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내 관점에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 재집권을 계기로 유럽이 안보 자립을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날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EPC 정상회의에서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우리 운명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며 미국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문제는 우리가 유럽의 이익을 수호할 의지가 있는지"라며 자강 안보 노력을 강조했다.
NYT는 "트럼프의 재집권은 유럽이 더 의지할 수 없게 된 미국에 맞서 스스로를 강화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다만 프랑스나 독일 등 주요국 정부가 국내 정치 문제로 힘을 쏟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유럽 차원에서의 강력한 대응은 어려울 수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싱크탱크 유럽외교협의회(ECFR)의 자나 푸글리에린 연구원은 영국, 프랑스, 독일이 협력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프랑스와 독일 정부의 허약함이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푸글리에린 연구원은 이 때문에 트럼프 집권 1기 때처럼 각 유럽 국가가 양자 협상을 시도할 수 있다면서 "유럽에는 리더십이 거의 없고 유럽위원회나 EU 기관들이 주도할 수 없다. 가장 강한 회원국만이 주도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파리 몽테뉴 연구소의 조지나 라이트 선임연구원도 "유럽은 단결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단결하게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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