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집권] 더 강해져 돌아온 '美우선주의'에 미중관계 가시밭길 예고
고율관세 압박에 무역갈등 재발 가능성…4년전 비해 기술역량 강해진 中 대응 주목
"트럼프, '美 대만방위' 약속에 회의감"…北美대화 시도시 中역할 부각될듯
(베이징=연합뉴스) 정성조 특파원 = 4년 시차를 두고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2기'가 막을 올리면서 미중 관계도 다시 큰 변화를 맞게 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그간 중국을 '복합적 위협'으로 규정하면서 집권 1기 수준을 뛰어넘는 고율 관세 부과를 공언한 상태라 경제 둔화 속에 전략 산업 육성에 힘쓰고 있는 중국과 무역 마찰이 한층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외교·안보 영역에서는 대립 구도를 유지하면서도 대만 문제 등을 둘러싸고 우회적·변칙적 대(對)중국 접근이 나올 가능성도 거론된다.
아울러 트럼프 당선인이 북미 대화에 나서려 할 경우 중국과의 또 다른 소통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 트럼프 "모든 中 수입품에 60% 관세"…전문가 "중국 때리기 더 강해질 것"
"그들(중국)이 우리와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동차마다 약 100%에서 20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며 그들은 미국에서 팔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난 7월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직을 수락한 트럼프 당선인의 일성은 중국산 자동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 발표된 미국 공화당 정강정책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조 지속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은 외국산 수입품 전반에 10∼20% 관세,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는 60% 고율 관세 부과를 공언한 상태다.
그런 만큼 '트럼프 1기' 시기 관세 전쟁과 조 바이든 행정부의 첨단 기술 통제 등 중국 견제 전략으로 바람 잘 날 없던 미중 관계가 통상 영역을 중심으로 한층 심각한 격랑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효영 국립외교원 교수는 최근 보고서에서 "트럼프 재집권 시 '중국 때리기'는 더 강력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중국에 대한 디커플링(공급망 등 분리)을 넘어 통상 관계 단절 또는 이를 위협하는 형태로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이 1980년 이후 중국에 부여한 최혜국대우(MFN) 지위와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 철회 카드를 꺼내 들 수 있고,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선별적 기술 통제 정책인 이른바 '마당은 좁게, 담장은 높게'(small yard, high fence)를 넘는 광범위한 기술 통제(big yard, high fence)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이 교수는 짚었다.
◇ 경제 회복 바쁜 中 부담 가중하나…4년간 첨단기술 역량 강해진 점은 새 변수
하지만 '트럼프 2기'를 맞는 중국 상황은 4년 전과 여러모로 다르다.
중국 경제성장률은 트럼프 당선인의 지난 임기 당시인 2017년 6.8%, 2018년 6.7%를 기록하다가 관세 전쟁이 본격화한 2019년 6.0%로 꺾였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성장률은 2022년 3.0%까지 떨어졌고, 작년 5.2%를 달성했으나 올해는 3분기까지 4.8%에 머물고 있다.
취약해진 경제 상황에서 미국이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의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다만 첨단 기술 영역이 경쟁 핵심으로 떠오른 점은 4년 전과 다른 새로운 변수로 꼽힌다.
중국 기업들은 자체 개발과 우회 무역으로 첨단 반도체를 포함한 기술 통제를 뚫고 있고, 당국의 집중 육성 속에 전기차·배터리·태양광 등 분야는 서방 진영의 견제 대상이 될 정도로 성장했다.
미국이 인공지능(AI) 등 대부분 첨단 분야에서 여전히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지만, 자국 내 출혈 경쟁에서 살아남은 중국 기업은 내수 시장과 보조금 등에 힘입어 세계 경쟁력을 갖추는 '모범 사례'를 하나씩 축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뿐 아니라 미국 동맹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을 향해서도 관세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큰 만큼, 중국이 그간 '중국 견제' 대열에 섰던 유럽·아시아 등 국가들과 개별 접촉에 나서 대응할 수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 "트럼프, 전통적 외교 절차 우회 가능성"…미중 대결 구도 속 미중 정상 재회에 주목
바이든 정부가 전통적 동맹국들을 중심으로 중국의 부상에 대응한 '관리된 경쟁'을 목표로 삼았다면, '거래'와 즉각적 이익을 선호하는 트럼프 정부에서는 미중 사이 긴장감과 변동성이 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성원·피터 워드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달 발표한 '트럼프 재집권 시 미국의 한반도 정책 변화 전망과 대응' 보고서에서 향후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관해 "공격적 관세, 기업별 제재, 전통적 외교 절차를 우회하는 방식의 비정례적·수시적·거래적 접근이 예측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동맹과 함께하는 중국 압박'에서 '미국 주도의 중국 압박'으로 무게중심이 어느 정도 이동하는 것일 뿐 미중 대결 구도 자체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 본다.
각종 안보·경제 이슈를 두고 바이든 정부와 갈등을 지속하면서도 관계 개선 노력 역시 기울여온 중국으로서는 미국 정부와 소통하는 문법을 바꿔야 할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 정부 고문인 천둥샤오 상하이국제문제연구원 원장은 최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트럼프 2기'가 현실화한다면 더 큰 불확실성·불안정성·불가측성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당선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재회'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에도 관심이 모인다.
두 사람은 미국이 촉발한 관세 전쟁과 화웨이 배제, 이에 반발한 중국의 관세 인상·희토류 수출 중단 등 보복으로 양국 관계가 악화한 2019년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약 80분간 담판으로 극적인 '휴전'을 끌어낸 바 있다.
당시 두 정상은 "공정한 무역 거래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역사적인 일이 될 것"(트럼프 당선인), "중미 협력이 양국에 이익이고 싸우면 서로 상한다"(시 주석)는 말을 주고받으며 '톱다운'식 문제 해결을 모색했다. 시 주석은 트럼프 당선인이 추진하던 북미 대화에 지지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9월 자신이 백악관에 재입성한다면 "첫 번째 통화를 시 주석과 할 것이며, '당신이 한 (농산물 구입) 합의를 존중하라'고 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선 "그(시 주석)는 14억명을 철권으로 통제한다"며 "내 말은 당신이 좋아하든 아니든 그가 명석한 사람이라는 의미"라고 언급했다.
◇ 대만 입장은 '모호'…북미 대화 나설 경우 미중 협조?
중국이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이익'으로 규정해온 대만 문제 역시 '트럼프 2기' 미중 관계의 주요 변수 가운데 하나다.
바이든 정부는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와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음'이라는 원칙을 확인하면서도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확대하고, '칩4'(한국·미국·일본·대만의 반도체 협력 체제)를 추진하는 등 대만을 중국 견제 핵심 축으로 삼아왔다.
중국은 미국 주요 인사의 대만 방문 등을 이유로 '대만 포위' 훈련을 감행하며 무력 통일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대만을 향한 트럼프 당선인의 태도는 다소 모호한 상황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는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시 중국 국가주석이 대만 봉쇄를 하지 않도록 어떻게 설득할지를 묻자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시 주석)이 대만에 들어가면 나는 당신에게 세금을 매길 것이다. 관세를 150∼200% 부과한다는 뜻"이라며 '동문서답'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대선을 며칠 앞두고 "트럼프는 미국의 대만 방위 약속에 회의감을 표해왔고, 이는 그가 중국과의 긴장 고조에 직면할 경우 대만을 포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고 평가했다.
지난 집권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세 차례 만난 트럼프 당선인이 이번 임기에는 어떤 대북 접근법을 채택할지, 이와 관련한 중국의 역할도 관심거리다.
국제 사회 대북 제재 영향력이 급감한 상황에서 북미 대화가 열리려면 중국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북러 밀착 국면과 거리를 두고 있지만,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관한 '쌍궤병진'(雙軌竝進·비핵화와 북미평화협정 동시 추진)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대북 영향력 유지·확대 차원에서 개입을 원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트럼프 당선인이 북미 대화에 나설 경우 이를 위한 미중 간 소통·협조가 이뤄지는 시나리오도 그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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