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집권] '트럼프 절친' 아베 사라진 日…美, 방위·무역 전방위 압박할듯
예고대로 관세 인상시 日수출에 영향…'트럼프 반대'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도 난관
이시바 '아시아판 나토' 실현 가능성 희박…日, '모시토라' 염두 조기 정상회담 추진
(도쿄=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실상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확정되면서 미일 관계도 조 바이든 대통령 시대와는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가 출신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동맹국에 대해서도 미국 이익을 우선시하면서 일본에 방위 부담을 더 늘리고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도 해소하도록 압박을 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에서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밀월 관계를 구축했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2022년 숨지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접점이 있는 주요 정치인이 사라진 것도 '트럼프 2기'를 맞는 일본에는 불안 요소다.
◇ 일본에 방위비 인상 등 압력 가할 듯…이시바표 안보 공약 실현 어려워져
트럼프 전 대통령은 동맹국과 관계에서도 가치보다는 '돈 문제'를 우선하면서 일본에 방위비나 주일미군 주둔비용(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며 압력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지난달 언론 대담에서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으로 부르며 최근 한미 양국이 합의한 방위비 분담금보다 9배 이상인 100억달러(13조원)를 요구했다.
그는 또 국내총생산(GDP) 대비 2%를 방위비로 지출한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목표치에 대해서도 "2%는 세기의 도둑질(the steal of the century)이다. 3%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모두 동맹을 거래 관계로 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시각을 여실히 보여주는 발언이다.
일본 정부는 2022년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3대 안보 문서를 개정하면서 GDP 1% 수준인 방위 관련 예산을 2027회계연도에 2%로 늘리기로 했지만, 트럼프 발언으로 보면 전혀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이다.
주일미군 주둔비용 증액도 일본 정부에 다시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크리스토퍼 존스턴 일본 석좌는 지난 7월 교도통신과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과거 대통령 시절 주일미군 주둔비용 인상을 요구했던 점을 언급하며 "주둔비용 부담에 대한 (일본과) 현재의 특별 협정은 2027년 3월까지이지만 다음 교섭은 어려울 것"이라고도 예상했다.
지난달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주장해 온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창설과 미일지위협정 개정은 애초부터 실현 가능성이 작았으나 트럼프 당선으로 실현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졌다.
아시아판 나토는 뜻을 같이하는 아시아 나라들이 집단 자위권을 바탕으로 하는 안보 체계를 만들자는 구상인데 가뜩이나 동맹이나 나토에 부정적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것으로 보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또 미일 동맹을 더욱 평등하게 만들자는 미일지위협정 개정에 대해서도 미국과 마찰만 키울 뿐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호소야 유이치 게이오대 교수는 요미우리신문에 "미국 대통령 선거를 거쳐 미국 내에서 동맹에 대한 불신감이 커지면 아시아판 나토 창설은 더욱 곤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트럼프 관세 인상시 日자동차 산업에 영향…엔/달러 환율 전망은 어려워
경제 분야에서도 지난해 미국에 712억달러(약 97조9천억원) 무역흑자를 거둔 일본에 대해 상당한 압력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부터 자국 무역 적자 해소를 핵심 정책 목표로 삼아왔다는 점에서 무역 적자가 큰 국가를 대상으로 압박 강도를 높여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그는 대선 기간 전반적 관세 인상을 통한 무역적자 해소를 예고한 바 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 시 관세율을 10%까지 올리는 '보편적 기본 관세'를 도입하고 중국산 수입품에는 6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대로 정책을 시행하면 일본은 자동차 산업 등을 중심으로 미국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엔/달러 환율 움직임은 예상이 어렵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약한 감세와 관세인상 정책으로 물가 상승률이 높아지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어려워져 미일 간 금리 차로 엔화 약세가 진행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그가 지난 7월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환율 문제가 외국서 제품을 판매하는 미 제조업 기업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엔화와 위안화 약세를 강하게 비판한 뒤 엔화가 달러화에 대해 강세로 전환한 바도 있어 향후 환율 예측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제철이 공들여 온 US스틸 인수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여러 차례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힌 바 있어 성사 가능성이 작아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에도 "(US스틸을 일본제철에) 팔게 놔두지 않겠다. 좋은 거래일지 몰라도 상관없다"며 "내가 그곳(백악관)에 도착하기 전에 (거래가) 완료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 트럼프-아베 성공 경험에…"이시바, 이달 방미해 당선인과 조기회담 검토"
일본 정부는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힌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당선을 내심 바란 것으로 추정됐다.
해리스 부통령과 비교해 예측이 어려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들어가면 미일 관계 관리가 그만큼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에도 오래전부터 대비하면서 관계 맺기에 힘을 기울여 왔다.
일본은 자국 외교의 중심인 미일 동맹 강화를 위해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당선인과 조기 회담을 개최할 방침을 세우고 추진해 왔다.
마이니치신문은 이시바 총리가 이달 후반 방미해 당선인과 회담을 검토하고 있다고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지난 2일 보도했다.
이시바 총리가 이달 중순 페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브라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잇달아 참석한 뒤 귀국길에 미국에 들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앞서 아베 전 총리가 2016년 11월 트럼프 당시 당선인과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 면담하면서 개인적 관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면서 이후 '트럼프 1기'에 미일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된 바 있다.
일본은 이 경험을 토대로 양국 지도자 간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 조기 회담을 추진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다시 입성하는 것을 우려하는 용어인 '모시토라'(혹시 트럼프)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트럼프와 관계 구축을 위해서도 공을 들였다.
지난 4월에는 집권 자민당 실력자이자 기시다 후미오 당시 정권을 뒷받침해 온 아소 다로 전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만나 양국 관계를 논의했다.
미일 정상회담 직후 이뤄진 이 만남에 대해 '모시토라'에 대비한 행보라는 해석이 제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면담에서 "(아베) 신조는 내 훌륭한 친구"라며 "그는 정말로 훌륭한 인물이며, 우리가 모두 존경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가 그립다"고 말했다.
그는 2022년 7월 아베 전 총리가 피격됐을 때도 소셜미디어에 아베 전 총리에 대해 "진정으로 멋진 남자이자 지도자인 아베 전 총리는 내 진정한 친구 중 한 명"이라며 '절친'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정치학자인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산케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아베 전 총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제어할 수 있었지만, 이시바 총리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면서 아베 부재가 향후 미일 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sungjin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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