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취업 스펙'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구직 청년 스펙 경쟁 부담 덜어주자' 캠페인
정형화된 입사지원서 탈피 기업들 늘어나야
(서울=연합뉴스) 최재석 기자 = "초중고 입시 경쟁과 사교육 부담에 힘겨웠던 우리의 청년들이 대학에 들어와서도 취업 스펙 때문에 그에 못지않은 고통을 반복하지 않도록 함께 나서 주십시오."
시민단체 '교육의봄' 송인수·윤지희 공동대표는 이 단체 소식을 온라인으로 받아보는 이들에게 지난달 30일 이메일을 보내 '스펙 다이어트 캠페인'을 지지하는 응원 서명에 동참해 달라며 이같이 호소했다. 서명자가 이달 초 2천명을 넘겠지만 목표 1만명에는 한참 모자란다.
이 단체는 '어떻게 하면 대학생들이나 구직 청년들의 취업 부담을 낮추고, 대학 시절에 자신이 가진 역량을 따라 의미 있게 대학 생활을 하도록 도울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비롯된 이 캠페인을 지난 5월부터 시작했다.
이 캠페인을 통해 스펙 다이어트 기업을 올해 말까지 30개, 2026년까지는 300개 발굴해 소개할 계획이다.
교육의봄은 '출신학교에 의존하지 않는 기업의 채용문화를 확산시키는 운동'을 다양하게 벌이는 단체로 2020년 재단법인으로 출발했다.
◇ '오버 스펙' 줄이는 게 급선무
이 단체는 구직 청년들이 접하는 문제의 실상을 알기 위해 관련 자료를 조사한 결과 청년들의 취업 준비 지원 활동보다는 '오버 스펙' 자체를 줄여주는 일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기업의 채용이 과거 스펙 중심에서 직무역량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전환되는 추세지만 취준생들은 여전히 스펙 경쟁을 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교육의봄은 지난 7월 기업과 취업준비생의 채용 미스매치의 실태와 원인을 주제로 한 포럼을 열고 선행 연구와 자체 조사를 바탕으로 생산한 자료들을 공개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25개 공공기관 신규 입사자 349명을 대상으로 인식 조사한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취준생들은 월평균 43만5천원 비용을 들여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최근 자격증 취득 비용이 큰 폭으로 올라 취준생들의 부담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이 단체가 올해 취준생 2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취업 비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출은 자격증 취득(35.3%)과 학원비(33%)였다.
취준생들이 취업 스펙을 마련하는데 할애하는 시간도 상당하다. 통계청 자료(2024년 5월)에 따르면 휴학 경험이 있는 대졸자 중 휴학 사유 1위는 '취업 및 자격시험 준비'로 나타났다. 남자의 경우 '병역의무 이행' 사유를 제외한 통계다.
교육의봄 김선희 연구원은 "문제는 큰 비용과 많은 시간을 투자해 준비한 스펙이 취업 후 현업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입사 후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되는 스펙에 대해 72.8%가 '인턴 및 기업 직무 경험'이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응답한 반면 어학 점수와 해외 경험, 수상 경험, 공모전 및 프로젝트, 봉사 활동 등 그 밖의 대부분 스펙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 "입사 지원서가 과도한 스펙 부추겨"
취준생들의 불필요한 스펙 쌓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입사지원서가 요구하는 스펙 기재가 꼽힌다.
입사지원서에 온갖 스펙을 넣는 칸이 있기 때문에 실제 채용에 얼마나 반영될지는 모르지만 취업이 절실한 청년들 입장에서는 단 하나의 스펙 기재란도 비워둘 수 없다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취업포털에 채용공고를 올린 1000대 기업의 입사지원서 150개를 분석한 결과 스펙 기재란에 출신학교(99.3%), 어학 점수(98%), 자격증(98%), 학점(93%)의 경우 대부분 기업에서 기재하게 돼 있었다.
그런데 입사지원서에 있는 스펙 항목에 대한 취준생과 기업 인사담당자가 느끼는 중요도에 큰 차이가 나는 '미스매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의봄이 취준생과 인사담당자 각 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인턴 경험의 경우 취준생 대부분(96%)이 채용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여기지만 인사담당자는 42%만이 그렇게 생각했다. 이 단체 전선희 연구팀장은 취준생이 인사담당자보다 2배 이상 중시한 항목이 전체 스펙 10개 중 인턴 경험을 비롯해 7개에 달했다고 밝혔다.
일부 기업들이 서류전형에서 지원자를 가려낼 때 스펙이 리스크도 적고 비용도 많이 안 드는 방식이기 때문에 쉽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산업인력공단 국가직무능력표준원장을 지낸 김진실 박사는 "기업들이 채용공고에 해당 직종에 대한 직무기술서를 구체적으로 공개만 해도 취준생들이 필요한 스펙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정형화된 스펙으론 적합 인재 선발 어려워"
입사지원서에 불필요한 스펙 기재란을 없앰으로써 취준생들이 시간적, 금전적 비용을 줄이고, 역량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도록 하자는 취지의 캠페인에 동참한 기업은 이달 4일 현재 11개다. 입사지원서에 스펙 기재란을 아예 없애거나 줄인 기업이나 자유 양식 이력서로 입사지원서를 받는 기업들이다.
한솔그룹 지주회사인 한솔홀딩스는 '스펙 다이어트 2호' 기업이다. 이 회사는 입사지원서에서 외국어 활용 능력, 컴퓨터 활용 능력, 수상 경력, 교육 이수 사항, 학내외 활동 등 5개 항목을 없앴다.
소상공인을 위한 경영관리 서비스 프로그램인 '캐시노트'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한국신용데이터(KCD)는 자유양식 이력서로 인재를 채용하고 있다. 단순히 출신 학과나 스펙보다 회사에 필요한 역량을 갖춘 인재 선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 윤방현 팀장은 "정형화된 스펙 중심의 이력서가 아닌 자유양식 이력서를 도입한 것은 입사 지원자가 그동안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보는 것이 업무 역량 평가에서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bo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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