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빼빼로데이'는 제과업체가 만들었다?

입력 2024-11-06 08:15
[팩트체크] '빼빼로데이'는 제과업체가 만들었다?

1990년대 초중반 부산·경남 학생들 사이서 시작 유력

'소비자가 만들고 제과·유통업계가 키운' 독특한 기념일

일본도 매년 11월 11일은 '포키와 프렛츠의 날'



(서울=연합뉴스) 박형빈 기자 = 매년 11월 11일 '빼빼로데이'가 다가오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빼빼로데이가 특정 제과업체와 유통업계가 만들어낸 상술이라는 비판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가족, 연인, 친구, 직장 동료를 가리지 않고 얇은 막대 모양의 초콜릿 과자를 주고받는 이 기념일은 수십 년을 거쳐 사실상 한국의 토종 문화로 자리 잡았지만, 그 유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과연 빼빼로데이는 세간의 이야기처럼 업계가 만들어낸 것일까.

정부가 공식적으로 정한 법정기념일이 아닌 이상 기념일의 원년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언론에 '빼빼로데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1996년 11월 기사로 당시 상황을 유추해볼 수 있다.

기사에는 이 무렵 경남 지역의 10대 여학생들 사이에서 매년 11월 11일을 '빼빼로데이'로 칭하는 문화가 유행이었다고 나온다.

숫자 '1'이 네 번 반복되는 11월 11일에 서로 빼빼로를 주고받으며 과자 모양처럼 날씬해지기를 기원한다는 것이다.

빼빼로를 제조하는 롯데웰푸드(옛 롯데제과)는 이런 현상에 착안해 이듬해 11월 11일 서울 강남과 경남 창원 일대에서 빼빼로를 무료로 나눠주며 '빼빼로데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된다.

롯데웰푸드의 설명도 이와 다르지 않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오래전 일이라 당시 (경위에 대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면서도 "회사 차원에서 만들어낸 문화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1990년대 중반 경남 지역의 영업사원들이 11월마다 빼빼로 판매량이 느는 점을 이상하게 여겨서 그 원인을 파악해 본사에 보고했고, 이후 롯데에서도 '빼빼로데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물론 특정 지역 일부 10대들의 문화가 전국적인 기념일로 확산한 데는 관련 업계의 대대적인 마케팅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 때문에 빼빼로데이는 '소비자가 만들고 제과·유통업계가 키운' 독특한 기념일로 보는 게 중론이다.

이에 대해 롯데웰푸드 측은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등 다른 과자 관련 기념일이 연인에 국한돼있지만, 빼빼로데이는 포괄하는 의미와 대상 연령대가 다양해 상대적으로 쉽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실제 빼빼로데이의 흥행에 고무된 제과·유통업계는 많은 '데이'를 만들어냈다.

'삼각김밥데이'(3월 3일·숫자 3이 반복되기 때문), '고래밥데이'(12월 12일·12를 옆으로 뉜 모양이 고래와 닮았기 때문) 등을 만들어 유사한 마케팅을 시도했지만, 대중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빼빼로데이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져 해외로 '수출'된 기념일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만하다.

일본 기념일협회에 따르면 일본 역시 매년 11월 11일을 '포키와 프렛츠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협회는 홈페이지에서 '에자키글리코 주식회사가 자사의 인기 상품 포키와 프렛츠의 PR로 (기념일을) 제정했다'며 '과자의 형태가 숫자 '1'과 비슷하기 때문에 1999년 11월 11일을 1회로 기념했다'고 설명한다. 1999년은 일본식 연호로 헤이세이 11년이기에 '11년 11월 11일'인 셈이다.

국내에서 학생들 사이에 퍼진 게 1990년대 초중반, 롯데웰푸드가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선 것이 1997년이므로 과자의 탄생과 별개로 기념일은 시기적으로 우리나라가 앞선다.

binz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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