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유출 비상] ② 사업장서 카메라 앱 작동 멈춰…임직원 정보보호 서약도
전직 임원이 수조원대 기술, 중국 등으로 빼돌려…퇴사전 기술 자료 3천장 출력하기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 정보보안·직원교육…"인력유출 막고 처벌 강화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한지은 기자 =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첨단 기술 경쟁이 격화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에서 외국 업체로의 기술 유출이 잇따르고 있다.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들여 개발한 기술이 유출되면 큰 피해를 보는 국내 업계는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보안과 직원 교육에 힘쓰는 한편 인력 유출 방지에 고심하고 있다.
◇ '기술 유출 먹잇감' 삼성전자·SK하이닉스
3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핵심 기술의 해외 경쟁 업체 유출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피해 건수도 해마다 늘고 있다.
정부는 외교적 민감성을 고려해 기술 유출 대상국 통계를 공개하지 않지만, 유출 대상국은 주로 한국과 산업 경합도가 높아지는 중국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굴기'를 내세운 중국은 글로벌 반도체 업계를 이끄는 한국을 맹추격 중인데, 아직 양국 기술 격차가 커서 국내 기술이 유출에 취약한 상황이다.
실제로 최근 적발된 반도체 기술 유출 사례도 대부분 중국으로의 유출이었다.
특히 기술력에서 앞선 세계 1위 메모리 업체 삼성전자와 인공지능(AI) 메모리 강자인 SK하이닉스는 기술 유출 범죄에 먹잇감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전직 임원과 수석 연구원은 중국 지방정부로부터 4천억원을 투자받아 중국에 회사를 만들어 삼성전자의 핵심 기술을 빼돌렸다. 두 사람은 현재 구속 상태로 재판 중이다.
이들은 삼성전자가 4조여원을 투입해 독자 개발한 D램 공정 기술을 부정 사용해 20나노 D램을 개발, D램 시범 웨이퍼 생산까지 성공했다.
이 회사는 개발에 통상 4∼5년 걸리는 D램 반도체 공정 기술을 불과 1년 6개월 만에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에서도 기술 유출 피해가 속출했다.
SK하이닉스에서 근무하던 중국 국적 A씨는 고연봉을 받고 중국 화웨이로 이직한 후 반도체 불량률을 낮추는 핵심 기술을 빼돌렸다가 구속돼 재판받고 있다.
A씨는 SK하이닉스 퇴사 직전 핵심 반도체 공정 문제 해결책과 관련한 자료 A4용지 3천여장 분량을 출력한 것으로 파악됐다.
SK하이닉스의 한 협력사 부사장 B씨는 SK하이닉스와 협업하며 알게 된 하이케이메탈게이트(HKMG) 제조 기술을 중국 경쟁 업체에 유출했다. 이 기술은 반도체 공정을 미세화해 모바일용 D램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또 B씨는 삼성전자 자회사의 전직 직원을 통해 몰래 취득한 이 회사의 장비 도면을 빼돌려 중국 수출용 장비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 사업장서 카메라 앱 작동 멈춰…임직원 정보보호 서약도
잇따른 기술 유출 피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우선 회사 차원에서 가능한 정보 보안과 직원 교육 강화에 나섰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정보보호센터에서 정보 보호, 정보기술(IT) 보안, 정보 분석, 보안 교육 등을 진행한다.
사업장을 나갈 때 각종 서류나 이동식저장장치(USB), 노트북 등을 가지고 나갈 수 없도록 철저히 검문하고 외부에서 내부 프로그램 사용을 제한한다.
사업장을 들어오면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앱)이 멈추는 등 허가되지 않은 촬영 또한 엄격하게 통제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사업장에서 정보 보호를 매우 강조하고 보안 교육을 비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어 임직원 모두 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정보보호 책임자(CISO)인 산업보안담당 임원을 중심으로 보안 리스크를 관리·통제해 경영 활동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
생산 데이터 유출 예방을 위해 팹(생산공장) 접근 통제 시스템을 운영 중이며, 국가 핵심 기술 및 팹 생산 장비 정보 등 중요 정보 자산에 대한 보안 점검을 상시로 실시한다.
또 구성원을 대상으로 연 1회 정보 보호 서약을 체결하고, 매월 보안의 날을 정해 각 부서 리더 주관으로 보안 교육을 한다.
이런 노력도 중요하지만 기술 탈취 수법이 점점 지능화되고 있어 근본적으로는 처벌 강화와 함께 기술 인력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공들여 키운 핵심 인력이 해외 경쟁사로 이직하면서 핵심 기술이 함께 유출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초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설계 업무를 담당하던 SK하이닉스 전 연구원 C씨가 경쟁사 미국 마이크론에 임원급으로 이직한 것에 법원이 제동을 건 사실이 알려지며 업계에 충격을 줬다.
따라서 오랫동안 반도체 산업에 몸담은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국내 재취업을 유도하는 정책 등을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퇴직자가 제도적으로 경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반도체 인재를 키우는 교육 기관, 시설 등에서 후배 양성에 힘쓰는 등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굳이 해외로 갈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 입장에서 정보 보호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유출에 대한 양형 강도가 높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ice@yna.co.kr, writ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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