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왕국 사우디, '사막의 다보스'에서 AI 허브 포부
제8회 FII 폐막…대외투자서 내부 성장으로 기조 전환
'실세' 빈살만 왕세자는 안보여…중동 위기 속 '로키'
(이스탄불=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을 선도하는 허브로 탈바꿈하겠다는 포부를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일명 '사막의 다보스포럼' 무대를 통해 밝혔다.
31일(현지시간)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사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한 이번 제8회 FII 행사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 기후변화 대응, 여성의 리더십 등 다양한 주제가 다뤄졌지만, 무엇보다 주최국 사우디가 무게를 둔 화두는 AI였다.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국부펀드 PIF의 야시르 알루마얀 총재는 첫 번째 토론 일정에 패널로 참석해 "우리는 AI 분야 투자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우디는 AI의 단순히 지역적 허브가 아니라 글로벌 허브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대외투자 비중을 줄이고 국내 경제 발전에 더 집중하겠다고 밝혀온 사우디가 AI로 대표되는 IT 기술을 자국의 미래 먹거리로 삼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첫날 예정에 없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원격 대담이 깜짝 진행돼 좌중에 놀라움을 안기기도 했다.
주최 측은 대형 스크린에 등장한 머스크와 20분 가까이 대화하며 AI 기반 로봇 휴머노이드가 2040년쯤 100억대 넘게 보급될 것이라는 대담한 전망을 끌어냈다.
2018년 테슬라 자금 지원 약속 여부를 놓고 PIF와 진실 공방을 벌이는 등 한동안 사우디와 반목했던 머스크가 깜짝 초청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우디가 AI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드러났다.
손정의(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그룹(SBG) 회장은 "인간 뇌보다 1만배 뛰어난 초인공지능(ASI)이 2035년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고,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AI에 이점만 있다는 생각은 맞지 않는다"며 소득분배 악화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체계 변화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행사 내내 저명인사의 통찰이 쏟아졌다.
리야드에 집결한 금융계 큰손들과 저명 학자들은 세계 트렌드에 영향을 미칠 다양한 주제를 논의했다.
내주 치러지는 미국 대선도 그중 하나였다.
29일 토론에서 '미국 경영자 다수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을 선호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제시되자 헤지펀드 시타델의 켄 그리핀 CEO는 "시장은 항상 미래지향적"이라며 "오늘 전망은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여부도 관심을 끌었다.
대형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테드 픽 CEO는 "(금리 억제를 통한) 금융 억제, 제로금리, 제로 인플레이션의 시대는 끝났다"라며 "금리는 더 높아질 것이고, 세계는 도전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도 "우리는 그동안 봐왔던 것보다 인플레이션이 더 크게 내재한 세상에 살고 있다"라며 연준이 시장 기대보다 금리를 빨리 내리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과 친이란 무장세력의 전쟁으로 위기에 빠진 중동 정세는 FII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첫날 삭스 교수가 AI의 위협을 얘기할 때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언급했고, 마지막 날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 외무장관이 가자 전쟁과 관련해 "휴전에 대해 많은 선언이 있었지만 협상이 무산된 것은 대부분 이스라엘 측이 요구를 새로 추가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한 정도다.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대신 미래지향적 의제와 개선된 사우디 투자환경 등을 부각하려는 주최 측의 의도로 해석된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이번 FII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는 사실도 엄중한 중동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직접 초대형 주거 신도시 프로젝트 '네옴' 계획을 발표하는 등 FII에 직접 나서곤 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그는 작년 FII 때 주빈으로 참석한 윤석열 한국 대통령과 직접 입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으나 올해 참석자인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 무스타파 마드불리 이집트 총리, 팜 민 찐 베트남 총리와는 동행하지 않았다.
리처드 아티아스 FII CEO는 올해 포럼의 성과에 대해 "우리는 혁신과 자본이 산업 조성뿐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지속 가능하고 포괄적인 미래의 창조에 융합되는 새로운 시대를 목격했다"며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를 향한 여정이 논의됐다"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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