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美대선 코앞 브릭스 정상회의서 서방 비웃으며 '세 과시'
작년엔 ICC 체포영장으로 화상 참석…올해는 안방서 '서방 제재 실패' 강조
트럼프 당선 가능성 커지는 등 1년새 국제정세 급변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에서 막을 올린 브릭스(BRCIS) 정상회의를 통해 서방의 고립 시도를 비웃으며 세력 과시에 나서는 모습이다.
미국 대선을 코앞에 두고 안방에 22개국 정상들을 불러 모은 푸틴 대통령은 전방위 외교 행보로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제재에도 건재함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타타르스탄 공화국 수도 카잔에서 24일까지 열리는 올해 정상회의는 브릭스가 회원국 수를 크게 늘린 뒤 처음 열리는 것이다.
2006년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신흥 경제국의 모임으로 창설된 브릭스는 2011년 남아공에 이어 지난해 이집트,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에티오피아를 새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며 몸집을 두 배로 키웠다.
이번 정상회의에는 36개국과 6개 국제기구가 참가하며, 참가국 중 22개국은 국가 원수가 직접 참석한다.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등을 비롯해 회의에 참석하는 거의 모든 정상과 양자 회담을 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해 브릭스 정상회의 때와는 판이한 행보다.
푸틴 대통령은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영장 발부로 지난해 8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정상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고 화상으로 참여해야 했다. 이를 두고 러시아의 고립과 좁아지는 푸틴 대통령의 입지를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올해는 브릭스 의장국으로서 신흥 시장 국가 정상들을 대거 초청,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최대 규모 외교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미국 주도 서방에 맞서는 '우군'을 과시하고 2년 반 동안 이어진 서방의 고립 시도가 실패했다는 메시지를 안팎에 보낼 수 있게 됐다.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알렉산더 가부예프 소장은 미국 CNN방송·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정상들과 함께 서서 악수하고 사진을 찍음으로써 러시아가 고립돼 있지 않음을 전 세계에 알리려 할 것"이라며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는 (푸틴에게) 진정한 선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1년 만에 완전히 달라진 '판'에서 열리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이 중동 분쟁 등 국제 현안을 다루며 브릭스를 '서방에 맞서는 새로운 세계 질서'로 내세우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CNN은 푸틴이 이번 정상회의에서 "미국이 주도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주장하기 위해 중동지역 분쟁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을 향한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있는 신흥국과 개도국)의 분노를 이용하려 할 것"이라고 짚었다.
NYT도 러시아가 서방이 주도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형성하고자 연합세력을 구축하고자 하며 이번 정상회의가 그러한 연합에 다른 국가를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부예프 소장은 "이번 정상회담은 푸틴의 반격"이라며 "푸틴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구 세계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선봉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브릭스는 그러한 새로운 세계질서의 가장 강력하면서 대표적인 기구"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대선을 보름 앞둔 미국 입장에서 더 뼈아플 수 있다고 CNN방송은 짚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될 경우 우크라이나를 확고히 지지했던 미국의 정책 방향이 바뀌게 되고, 전통적인 서방 동맹국과의 관계에서도 긴장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브릭스가 국제 현안에서 푸틴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으로 단일한 메시지를 보낼지는 의문시된다.
당초 브릭스는 신흥 경제 대국들의 느슨한 연대체로 시작했고 소속 국가 간의 정치적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여기에 회원국이 더 늘어나면서 정체성과 방향성이 더 복잡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인도 싱크탱크 탁샤실라연구소의 마노즈 케왈라마니는 서방에 맞서 세력을 불리려는 러시아나 중국의 의도와 달리 신규 회원국이나 가입 희망국과는 그러한 비전과 서방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려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케왈라마니는 신규 가입국들이 경제를 성장시키고자 하며 "이념적이지 않고 실용적으로" 참여하려 한다고 말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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