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 효과 없는 서울 아파트…"돈줄 막혀 전세도 안 나가"
시중은행, 대출 강화하고 금리는 되레 올려…9∼10월 매매 반토막
대출 안 돼 신규 전세 수요도 급감…서울 아파트 매물 증가폭 1위
"역전세난 재현될까 걱정"…전문가 "서울 아파트값 약한 조정국면 진입"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매매 거래는 뚝 끊겼고, 전세 물건도 잘 안 나가요. 전세 만기가 임박했는데 세입자를 못 구한 집들이 많아 역전세난이 다시 재현되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입니다."
지난 주말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의 말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11일 3년여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주택 거래 시장은 여전히 침체장을 이어가고 있다.
매매 거래는 급감했고, 전세를 찾는 수요도 예년에 비해 감소하면서 가을 이사철이 실종됐다는 말이 나온다.
◇ 기준금리 인하에도 대출 금리 더 올라…"돈 못 밀려 이사 못 간다"
20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9월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잠정지수는 -0.47%를 기록했다. 올해 1월부터 이어진 8개월간의 상승세를 멈추고 하락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은 9월 들어 빠르게 급감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계약일 기준)은 8천987건을 기록하며 2020년 7월(1만1천170건) 이후 3년 11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9월은 신고일이 열흘밖에 남지 않은 현재 2천730건에 그쳤다.
7월은 물론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 인상으로 거래가 줄어들기 시작한 8월(6천288건)에 비해서도 절반 이하로 감소한 것이다. 10월 거래량도 현재까지 722건 신고에 그쳐 거래 침체가 이어지는 분위기다.
시장이 관망세로 돌아선 가장 큰 원인은 가계부채 관리를 명목으로 한 금융당국과 시중은행의 돈줄 죄기에 있다.
9월부터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시행되며 대출 한도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중은행이 1주택자 이상 보유자에 대한 대출을 제한하면서 돈 빌리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송파구 가락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집을 사면서 대출을 안 끼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은행에서 일단 올해는 담보대출이 어려우니 내년에 상황을 보자며 대출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며 "돈줄이 막히면서 매수자들이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했지만 매수심리는 더 얼어붙는 모습이다.
시중은행들은 금리 인하 후 최근 열흘간 가계부채 관리를 이유로 주담대 금리를 더 올리는 등 대출 문턱은 더 높아졌다.
송파구 잠실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그동안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는 등 아파트값이 올라 매수자들이 부담스러워하던 차에 대출까지 줄이니 거래가 급감할 수밖에 없다"며 "기준금리 인하 효과는 전혀 없고 당분간은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대기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거래가 얼어붙으면서 매물은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20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물건 수는 총 8만6천934건으로 지난 11일(8만5천19건) 기준금리 인하 이후 2.2%가 증가했다. 전국 시도 중 매물 증가 폭이 1위다.
대출 규제가 본격화기 직전인 8월 말(8만545건)에 비해선 7.9%가 늘어 전남(8.2%)에 이어 두 번째로 증가 폭이 컸다.
마포구 아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매수세는 주춤한데 집주인들도 아직은 가격을 낮추지 않고 있어 매수·매도 모두 관망세가 짙어지고 있다"며 "연내 매매 거래가 회복되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전세대출 규제에 1천만원 낮춰도 안 나가"…수요 감소, 역전세난 우려도
시중은행의 돈줄 죄기는 전세시장으로 불똥이 튀었다.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올라 이자 부담이 커진 데다, 1주택 이상 보유자들은 아예 대출 창구가 막히면서 전세 갈아타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현지 중개업소들은 "가을 이사철이 무색할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추석 이후 가을 이사 수요와 겨울 신학기 수요들이 움직여야 하는 시기에 신규 전세는 거래가 크게 줄어든 모습이다.
노원구 상계동의 한 중개사무소 대표는 "매매 거래도 안되는데 전세도 찾는 사람이 없어 전세 물건이 쌓이고 있다"며 "만기가 11∼12월로 다급한 집주인들은 보증금을 1천만원씩 깎아서 내놓는데도 소화가 안 된다"고 말했다.
마포구 공덕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도 "대출이 안되니 상급지로 이전하거나 주택형을 넓혀가는 것을 포기하고 기존 집주인과 재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새로 전세를 얻어 이사를 오겠다는 수요자들은 발길이 뜸하다"고 말했다.
전세 대출이 막히면서 시장에선 계약이 무산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A씨는 지난달 직장 문제로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보증금 8억원짜리 전세를 얻기 위해 4억원을 대출로 충당하려고 했으나, 서울 외곽에 소형주택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대출이 거절돼 가계약금 300만원을 떼였다.
흑석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직장, 학교 등 다양한 사정으로 자기 집에 살지 못하고 전세를 얻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세대출이 막히다 보니 주거 이동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대부분 재계약을 하고 신규로 전세는 찾는 사람은 예년보다 줄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는 전월세 물건이 쌓이고 있다.
아실 집계 결과, 20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월세 물건은 총 4만9천99건으로, 5만 건에 육박했다.
불과 보름 전(4만3천842건)에 비해 11.9% 늘어난 것으로 전국에서 매물 증가 폭이 가장 크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1∼2년 전 전세사기 사태를 촉발한 역전세난이 다시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나오고 있다.
전세 만기가 다가오는데 거래는 안 되니 보증금을 내줘야 하는 집주인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노원구 상계동의 또 다른 중개업소 대표는 "의정부에 집이 있는 고객이 출퇴근 문제로 서울에 전세를 얻으려다가 대출이 안 돼서 포기했다"며 "매매든 전세든 대출이 필요한 사람은 서민들인데 대출 규제로 돈줄이 막히니 결국 서민들만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중은행의 대출 규제가 당분간 이어지면서 집값도 약세 전환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KB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거래량이나 실거래가 전망지수 등 시장 선행지표를 볼 때 작년과 비슷한 양상으로 시장의 흐름이 꺾이는 상황"이라며 "시장이 침체하면 서울 강북 등 외곽지역부터 집값이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 위원은 "단기적으로 서울은 약한 조정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주택 공급 부족 이슈는 여전하고, 앞으로 금리 인하 효과로 있어 집값이 크게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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