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사이언스] 노벨상 4번 거든 예쁜꼬마선충

입력 2024-10-19 08:00
[이지 사이언스] 노벨상 4번 거든 예쁜꼬마선충

2002년부터 올해까지 관련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화학상 수상

짧은 생애주기 등 특성으로 모델동물…1995년 대한기생충학회서 한국어로 가다듬어



(서울=연합뉴스) 나확진 기자 =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유전자 조절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마이크로RNA(miRNA) 발견에 기여한 미국 생물학자 빅터 앰브로스(70) 교수와 게리 러브컨(72) 교수에게 돌아갔지만, 이들의 연구 대상이었던 '예쁜꼬마선충'도 다시 한번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노벨위원회는 지난 7일 홈페이지에 올해 생리의학상 수상자의 공헌을 소개하며 "작은 벌레인 예쁜꼬마선충(C. elegans·Caenorhabditis elegans)에서의 획기적인 발견이 유전자 조절의 완전히 새로운 원리를 드러냈다"고 썼다.

게리 러브컨 교수도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다음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예쁜꼬마선충을 가리켜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badass) 유기체"라고 말했다.

앰브로스 교수와 러브컨 교수는 예쁜꼬마선충의 다양한 세포들이 적시에 발달하도록 제어하는 유전자에 관심을 두고 예쁜꼬마선충의 lin-4 마이크로RNA와 lin-14 유전자의 관계를 파고들었고, 그 결과 앰브로스는 lin-4가 lin-14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발견했고 러브컨은 그 조절 과정을 더 구체적으로 규명했다.



성체의 크기가 1㎜밖에 되지 않는 예쁜꼬마선충 관련 연구를 통해 받은 노벨상은 이번이 4번째다.

가장 먼저 예쁜꼬마선충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것은 2002년이었다.

시드니 브레너와 H.로버트 호비츠, 존 E. 설스턴 박사 등 3명은 예쁜꼬마선충에 관한 연구를 토대로 유전자가 장기의 성장 및 세포의 자살에 미치는 작용에 관한 연구를 해 그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어 2006년 RNA간섭현상(RNAi)을 처음으로 발견한 크레이그 C. 멜로와 앤드루 Z. 파이어 교수도 이중나선 구조의 RNA가 세포로 들어갔을 때 유전자 발현이 억제되는 이 현상을 예쁜꼬마선충을 통해 처음 규명했다.

2008년에는 녹색형광단백질(GFP)을 만드는 DNA를 예쁜꼬마선충 등 여러 생물에 삽입해 생물의 기관을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게 한 공로로 마틴 샬피 교수가 노벨 화학상을 공동수상하기도 했다.

예쁜꼬마선충의 활약은 노벨상에 그치지 않는다.

예쁜꼬마선충의 세포계보 지도, 신경계 지도가 작성되었으며, 전체유전체 지도가 밝혀진 최초의 다세포생물이 되었다.



또 영국 노팅엄 대학의 너대니얼 셰프시크 박사팀에 의해 2004년부터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수차례 머물다 왔으며, 2011년에는 ISS 내 액체형 자동영양공급장치 안에서 6개월을 보낸 뒤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를 타고 살아 돌아오기도 했다.

이처럼 예쁜꼬마선충이 연구자들의 주목받는 모델 동물이 된 이유는 정상적인 조건에서 생애주기가 3주로 짧고, 몸이 투명해 세포 분화 등 과정을 쉽게 관찰할 수 있으며 체세포가 1천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어서라고 서울대 유전과 발생 연구실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쓴 책 '벌레의 마음'은 소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예쁜꼬마선충 연구는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서울대 이준호 교수 연구팀은 예쁜꼬마선충이 생존에 열악한 환경에 놓였을 때 휴면 유충 단계인 다우어 상태로 변해 몸을 흔드는 방식으로 다른 동물에 올라타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하는 일종의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과 관련해, 이 행동을 일으키는 섬모성 신경세포에 daf-19m 유전자가 기능을 부여하는 등 역할을 하는 것을 규명해 2022년 국제 학술지 '셀 리포트'에 게재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 이승재 교수 연구팀은 수컷과 암수한몸(자웅동체) 두 성별이 있는 예쁜꼬마선충의 특성을 이용해 성별에 따른 면역력의 차이를 연구, 국제 학술지 '오토파지'(Autophagy)에 지난 7월 게재했다.

예쁜꼬마선충이라는 예쁜 이름은 어떻게 지었을까?

예쁜꼬마선충의 학명 'Caenorhabditis elegans'는 생물 분류상 새로운 선충 속(屬)을 의미하는 단어와 우아하다는 의미의 라틴어를 종(種) 이름으로 붙인 말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예쁜꼬마선충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기에 '우아하다'는 의미의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1994~1995년 대한기생충학회(현 대한기생충학·열대의학회)가 기생충학 학술용어를 정리하면서, 외래어로 된 기생충 명칭을 우리말 이름으로 개정하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하며 지금과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고 1995년 대한기생충학회 학술용어위원회가 발간한 기생충학 학술용어(II)에는 나타나 있다.

당시 위원회 간사를 맡은 엄기선 충북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명예교수는 19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당시 언론에서 이 동물을 이용한 연구를 소개하면서 '회충의 일종'이라고 소개해 제대로 명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ra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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