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총리 법률고문' 헌법재판관 후보자 논란…8차 투표도 부결
제1야당 대표 "야당 일치단결로 저지 성공"…여당에 대화 촉구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추천한 프란체스코 사베리오 마리니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8차 투표에서도 의회 문턱을 넘는 데 실패했다.
안사(ANSA) 통신 등에 따르면 8일(현지시간) 로마의 하원의사당에서 열린 마리니 헌법재판관 후보자 선출을 위한 8차 투표에서 투표에 참여한 342명의 의원 중 323명이 백지 용지를 냈다.
그 외에 10장의 투표용지는 훼손돼 있었고 9장은 누락됐다.
헌법재판관 선출 방식은 1∼3차 투표는 상·하원 총 의원 수(605명·상원 205명+하원 400명)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고, 4차 투표부터는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8차 투표에서도 마리니 후보자 선출에 필요한 의석(363표)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집권 우파 연정에서 소속 의원들에게 전략적으로 백지 투표 지시를 내렸다고 안사 통신은 전했다.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35조에 따라 대통령, 의회, 대법원에서 각 5명씩 지명한다. 야당은 멜로니 총리가 자신의 법률 고문인 마리니를 의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추천하자 강하게 반발했다.
1∼7차 투표가 모두 부결되자 멜로니 총리는 8차 투표를 앞두고 자신이 이끄는 이탈리아형제들(FdI) 소속 의원 전원에게 국회 소집령을 내렸다. 언론매체에 유출된 왓츠앱 메시지에는 "어떤 의원도 투표에 빠져서는 안 된다. 모든 공적·사적 약속을 취소하라"고 적혀 있었다.
이처럼 멜로니 총리가 표 단속에 나섰지만 8차 투표에서도 부결됨에 따라 실바나 시아라 헌법재판관이 지난해 11월 11일 퇴임한 이후 한 석 비어 있는 헌법재판관 선출이 언제 해결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야당이 반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마리니 후보자가 지난해부터 멜로니 총리의 법률 고문을 맡아 그가 헌법재판관에 선출되면 이해 충돌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당장에 11월 12일부터 이탈리아 지방정부에 더 많은 재정 운용 권한을 부여하는 지방자치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이 헌재에서 열린다. 야당은 이 법이 이탈리아 남북 격차를 더욱 확대할 것이라며 결사반대하고 있다.
두 번째는 그가 멜로니 총리가 추진하는 총리 직선제 개헌안을 입안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총리 직선제 개헌이 위헌 시비에 휘말리게 되면 그는 자신이 입안한 개헌안을 직접 심판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제1야당 민주당(PD)의 엘리 슐라인 대표는 "야당의 일치단결로 여당의 강행 처리를 막아냈다"며 "이제 그들은 야당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대화를 추구해왔지만, 지금까지는 벽에 대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며 "이번 투표 부결이 이제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의 전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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