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상흔 여전…트라우마 속 유령마을 된 이스라엘 키부츠
공습 피하려 밤에도 불 못 밝혀…마을 오갈 땐 군 검문소 통과
불에 탄 건물, 총알 자국도…희망 속 "안전 보장될까" 불안감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지금 우리 마을은 텅 비었고 황량해요. 저는 여기에 살고 있지만 겁이 나요."
이스라엘 네티브 하아사라 주민 나마 길러(49)씨는 돌아온 고향 마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네티브 하아사라는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급습을 받은 10여개 마을 중 한 곳이다. 아이들이 노는 소리에 활기가 넘치던 길러씨의 고향은 '그날' 이후 유령 마을처럼 변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년 전 하마스의 급습으로 피란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주민들의 이야기를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당시 하마스의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마을은 12곳 이상으로, 약 1천200명이 사망하고 약 250명이 인질로 끌려갔다.
NYT에 따르면 피해 마을 주민 대부분은 여전히 피란 생활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호텔이나 정부가 지원하는 임시 주택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길러씨는 전쟁 발발 뒤 세 딸과 아들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가 7개월 전에 돌아왔다.
이스라엘의 다른 지역이라고 해서 더 안전하지도 않고, 아이들에게 '집'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용기를 내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고향에서 마주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밤에는 혹시 모를 공습에 대비해 집을 어둡게 해놓고 지내야 했다.
텅 빈 마을에는 식료품점이나 이웃이 없어서 먹을 것은 더 많이 저장해놓기 위해 냉장고를 추가로 구입했다.
마을 안팎을 오갈 때는 군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또 다른 피해 마을인 비에리 키부츠(집단농장)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을 곳곳에는 총알구멍이 남아있고, 불에 탄 건물의 울타리는 포스터로 가려둔 상태다.
하마스의 급습 당시 이곳에서는 100명이 목숨을 잃었고 30명이 인질로 끌려갔다.
비에리 주민 닐리 바르 시나이(74)씨는 당시 남편을 잃은 뒤 마을을 떠났다가 지난 8월 돌아왔다.
그의 남편은 하마스의 공격 소식을 듣고 딸을 지켜야 한다며 밖으로 나섰다가 딸의 집 현관에서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시나이씨는 급습받은 장소들을 제외하곤 "믿을 수 없이 목가적인 곳"이지만 "여기에 사는 건 소풍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아이들이 깊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며 자기 손녀는 공황 발작 때문에 마을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고 말했다.
길러씨와 시나이씨는 앞날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듯 했다.
길러씨는 "마을은 다시 좋은 곳이 될 것"이라면서도 "만약 군대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다면…"이라고 덧붙였다.
시나이씨는 "비에리가 이전의 모습을 되찾을 가능성이 작다는 걸 알지만, 앞으로 마을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hrse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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