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판사 직선제 韓기업에 단기 리스크…송사 증가 전망"

입력 2024-10-07 07:00
"멕시코 판사 직선제 韓기업에 단기 리스크…송사 증가 전망"

현지 변호사 "미국과의 통상 환경 악화 우려도 부정적 영향"

소송 기간 단축 긍정 예측도…법대생 "정치 법관 양산할 것"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대법관을 비롯한 판사들을 국민들의 투표로 직접 선출하는 멕시코 판사 직선제가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 단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노무·행정 소송 건수의 증가로 인한 사법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는 관측 속에 때론 10년 이상 소요되기도 하는 소송 기간이 대폭 단축될 것이라는 긍정적 예측도 나왔다.

외국계 기업 자문 서비스 경험을 가진 마리오 에르난데스 변호사는 7일(현지시간) 연합뉴스에 "한국과 중국을 포함해 미국과 캐나다 등 멕시코에 투자한 기업들로서는 직선제 판사들의 심리가 단기적으론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낯선 변론 문화에서 법관의 판결 경향 파악은 중요한 정보인데, 사실상 이 정보 없이 재판에 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기업 소송의 경우 증거 개시 절차 진행이나 변론 같은 실무에서 케이스마다 법관 재량의 영역이 다를 수 있는데, 첨예한 분쟁 사건일수록 법리 설득 전략을 세우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에르난데스 변호사는 "법관들은 대체로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에 유리한 판결을 하거나 때론 합의 종결을 선호할 것"이라며 "이는 어떤 경우엔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는 뜻"이라고 진단했다.

마리오 가브리엘 변호사는 "외국계 기업들은 때론 정부 기관을 상대로 송사하는 경우가 있다"며 "대법관이나 법관에 대한 투명성 부족과 정치적 편향으로 인해 정부에 유리한 이해 상충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유권자 표 관리'를 위해 기업을 비롯한 민간 부문에 불리하게 판결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지 변호사들은 또 한국 등 외국계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 건수 자체도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멕시코 최대 교역 파트너인 미국과의 통상 환경 악화에 따른 잠재적 리스크 가능성도 나왔다.

멕시코에서 활동하는 엄기웅 법무법인 문두스 대표 변호사는 "미국 산업계에서는 민주주의 제도 약화 등을 이유로 우려 입장을 낸 바 있다"며 "미국에서 원산지 증명 강화 같은 비관세 장벽 세우기로 대응할 경우 한국 기업의 대미 수출 여건은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엄 변호사는 법률적 관점에서는 현재보다 불공정 판결이 나올 확률이 낮아질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는 "민족주의 성향 판결이 나올 것을 고려하더라도, 그간 국제사회에서 비판하던 부패한 판결 가능성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강화된 신속 재판 원칙도, 10∼15년씩 걸리는 송사로 인해 최초 소송 가액의 몇십 배에 달하는 금액을 놓고 다투는 기업들엔 희소식"이라고 부연했다.

이미 헌법개정을 통해 도입된 판사 직선제에 대해 대법원이 "합헌성 여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려 논란이 이는 가운데 현지 법학도는 여당에 가까운 '폴리 저지'(정치 법관)를 양산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오악사카(와하까) 베니토후아레스자치대 법학부의 아나이드 플로레스 학생은 연합뉴스에 "친(親)여당 성향 정치 법학자들이 판사로 선출되는, 특혜 구조"라며 "가장 심각한 측면은 그들이 선거자금을 불법적으로 끌어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멕시코 대통령 2명을 배출한 이 명문대에서 법학부 학생들은 대부분 판사 직선제에 강력히 반대하며 멕시코시티에서의 시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플로레스는 "명백한 이해관계를 가진 정당 관련자가 판사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단일 정당의 손에 권력이 중앙 집중화될 것이라는 건 자명하다"며 "이와 더불어 개헌 내용에 따르면 위헌적 행정명령에 대해 주민들이 스스로 방어하거나 사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현저히 좁아진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walde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