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멕시코 대통령 기자회견만 1천500번…"매일 언론과 소통"
로페스 오브라도르, 임기 내내 개혁드라이브…치안 개선 미미 비판도
'후계자' 셰인바움, 내달 1일 멕시코 헌정사 첫 여성 대통령 취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2018년 12월 취임 이후 거의 매일 카리스마 넘치는 아침 기자회견을 이끌며 높은 지지율을 구가한 멕시코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임기 마지막 일정을 소화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70) 멕시코 대통령은 이날 멕시코시티에 있는 대통령궁에서 연 정례 기자회견에서 "나는 이제 특별하고 뛰어난 여성에게 대통령 어깨띠를 넘겨준다"며 "누구보다 뛰어난 멕시코 국민을 위해 6년 가까이 헌신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스스로 자랑스럽고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방위대 지휘 소관을 군으로 이양하는 법안에 서명하고 자신의 임기 내 향상된 각종 경제지표를 개략적으로 설명한 뒤 "멕시코는 팬데믹에도 빈곤과 불평등을 줄일 수 있었고, 가장 약한 사람을 돌볼 줄 아는 국가로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별도의 설명을 통해 부패 척결, 최저임금 3배 이상을 비롯한 복지국가 기반 구축, 인프라 정비를 통한 성장 기반 마련,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틀 안에서 성공적으로 국정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현지 일간 라호르나다는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1929년 이후 90년 가까이 멕시코 정치사를 지배했던 우파 보수 성향 정치 문화를 왼쪽으로 돌리며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고, 근로자·약자 위주 정책을 통해 수십년간 정치권으로부터 무시당한다고 느꼈던 많은 주민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성과를 얻었다고 전했다.
실제 멕시코 유력 일간지인 엘피난시에로는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 임기 마지막 달 정부 평가 설문조사에서 68%가 대통령을 지지하는 긍정 평가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에르네스토 세디요(72) 전 대통령(1994∼2000년 재임)의 69% 이후 최근 30년 새 가장 높은 수치다.
반면, 로페스 오브라도르 반대파는 현 정부 들어 민주적 제도가 크게 후퇴하고 '총알 대신 포용'으로 대변되는 온화한 방식의 치안 정책으로 카르텔 활동을 사실상 방임했다고 비판한다.
자원 국유화를 기반으로 한 자국 에너지 기업 감싸기와 임기 막판 여대야소 의회 지형을 바탕으로 통과시킨 판사 직선제 등은 미국·캐나다 등 이웃 국가로부터도 투자 환경 악화 우려를 낳은 바 있다.
공과에 대해선 명암이 갈리지만,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주말과 휴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주고받으며 하루의 문을 여는 상징적인 모습으로 멕시코 사회에 각인될 것이라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엘우니베르살, AP통신, BBC스페인어판 등 멕시코 국내·외 언론은 멕시코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배경 중 하나로 이 아침 기자회견을 꼽기도 했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얼리버드)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마냐네라'로 통칭하는 멕시코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임기 동안 1천423회 진행된 것으로 현지 매체들은 추계했다.
대선과 총선을 함께 치르는 것을 골자로 한 개헌에 따라 현 대통령이 임기(6년) 중 2개월 일찍 퇴임하는 것을 고려하면, 평일에 거의 빠지지 않고 임기일(2천129일) 내내 기자들과 소통한 셈이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길게는 3시간 넘게 여는 회견에서 그날의 의제를 설정하고, 정부 정책에 대한 공격을 방어하며, 지지자를 결집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펼쳤다.
모든 회견은 생중계했다. 이날 마지막 기자회견에는 멕시코 대통령 공식 유튜브 채널에만 20만명 넘게 접속했다.
자신의 정책에 대해 꼬집는 기사를 대형 스크린에 띄운 채 "나는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다"며 상황을 뒤집는 특유의 모습은 마지막 기자회견에서도 간접적으로 드러났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참여를 원하는 86명의 언론인을 대상으로 '시계 증정 추첨'을 진행해, 바하칼리포르니아 지역 매체 기자에게 자신의 손목시계를 선물했다.
이 시계와 관련,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11만7천 페소(780만원 상당)짜리 스위스 명품을 차고 다닌다는 취지의 보수 언론 보도로 한때 '위선자'라는 공격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해당 시계는 디자인만 유사한 2천 페소(13만원 상당)짜리여서 되레 반대파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계자'로 꼽히는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2) 대통령 당선인은 내달 1일 취임한다.
멕시코 헌정사 200년 만의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이정표를 쓴 셰인바움 당선인은 정례 기자회견을 포함, 현 정부 정책 방향과 추진 방법론을 계승·발전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멕시코 대통령 취임식에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을 비롯한 정상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축 특사로 자리한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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