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도전·정몽구 뚝심·정의선 인사이트가 만든 1억대 생산
현대차 설립 57년만에 '1억대' 금자탑…정주영 포니 개발 등 토대
정몽구 '품질경영' 글로벌 공략…정의선 '전동화 퍼스트 무버' 도약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현대자동차가 창립 57년 만에 누적 생산 1억대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현대차의 누적 생산 1억대 달성은 주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비교하면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이 같은 기록 달성은 정주영 선대 회장의 도전정신과 정몽구 명예회장의 '뚝심 경영', 정의선 현 회장의 인사이트가 주효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억번째 생산 차량이 현대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라는 것도 현대차가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전동화를 선도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의미 있게 다가온다.
◇ 정주영 "우리 車가 세계 휩쓰는 날이 온다고 확신"
30일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대차 누적 생산 1억대의 토대를 세운 장본인은 정주영 선대 회장이다.
정 선대 회장은 자동차를 '달리는 국기'라고 칭하며 1967년 12월 자동차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현대차를 처음 설립했다.
그는 당시 "우리에게는 세계 제일의 무기가 있는데, 그 무기란 바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기능공들"이라며 "머지않아 한국의 자동차, 우리의 자동차가 세계 시장을 휩쓰는 날이 온다고 나는 확신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차는 창립 1년 만인 1968년 11월 울산공장에서 포드 2세대 모델인 코티나를 생산했다. 코티나에 이어 현대차의 발전을 견인한 것은 1975년 국내 첫 독자 모델로 출시된 포니다.
정 선대 회장은 포니의 탄생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는 자동차 수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고유 모델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직접 이탈리아로 날아가 신생 디자인 회사인 '이탈 디자인'을 세운 조르제토 주지아로에게 포니의 설계 용역을 맡겼다.
당시 30대였던 주지아로는 처음 디자인 의뢰를 받고 '허무맹랑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5월 이탈리아 레이크 코모에서 열린 '현대 리유니온' 행사에서 "정주영 선대 회장이 이탈리아에 왔을 때만 해도 현대차에 대해 잘 몰랐다"며 "하지만 이를 계기로 한국과 연결된 것은 매우 기분 좋고, 놀라운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포니는 정 선대 회장의 바람대로 1976년 한국 승용차 최초로 에콰도르 등 해외에 수출되는 기록을 남겼고, 1986년에는 국내 첫 전륜구동 승용차 포니 엑셀이 자동차 본고장 미국 땅을 처음 밟는 성과로 이어졌다.
주지아로는 포니를 시작으로 포니 엑셀, 프레스토, 스텔라, 쏘나타 1·2세대 등 현대차 초기 모델들을 디자인했다. 이 모델들의 인기에 힘입어 현대차의 글로벌 누적 생산량은 1986년 처음 100만대를 넘겼다.
이후 현대차 누적 생산량은 1996년 1천만대를 돌파한 데 이어 2013년 5천만대, 2019년 8천만대, 2022년 9천만대, 2024년 1억대를 차례로 돌파했다.
◇ 정몽구 '품질 경영' 바탕으로 전 세계 진출
현대차가 도요타,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보다 빠르게 누적 생산 1억대를 돌파할 수 있었던 데에는 '품질 경영'으로 대표되는 정몽구 명예회장의 '뚝심 경영'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부품 회사인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입사하며 자동차 산업과 처음 연을 맺은 정 명예회장은 1999년 현대차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품질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당시는 현대차와 현대차가 인수한 기아가 '바퀴 달린 냉장고와 세탁기'를 생산한다는 조롱을 받던 때였다.
그는 2001년 양재 본사에 '품질상황실'을 설치하고 세계 각국 고객의 불만 사항을 실시간으로 접수·처리했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현장 임직원들에게 모두 공유했다. 또한 불량을 대대적으로 줄이기 위해 글로벌 생산 공장마다 전수검사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런 노력 끝에 2004년 '뉴 EF쏘나타'가 미국 JD파워의 품질 조사에서 현대차 최초로 1위에 오르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대차 연구개발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남양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정 명예회장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으며 1천만대 안팎으로 판매된 아반떼(1천537만대), 엑센트(1천25만대), 쏘나타(948만대), 투싼(936만대), 싼타페(595만대) 등이 모두 정 명예회장 시절 주력으로 밀던 차량이다.
현대차는 정 명예회장 지휘 아래 해외 진출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현대차는 1997년 튀르키예 진출 이후 인도(1998년), 미국 앨라배마(2005년), 체코(2009년), 브라질(2012년), 인도네시아(2022년) 등에 차례로 해외공장을 세우며 연간 500만대 생산 능력을 갖춘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 떠올랐다.
◇ 정의선, 글로벌 '빅3' 이어 전동화 '퍼스트 무버'로 안착시켜
최근 몇 년 새 현대차를 주축으로 한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완성차 업계 '빅3'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정의선 현 회장의 인사이트가 적중했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정 회장이 자동차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전동화를 예견하고, 한발짝 앞서 투자한 덕에 현대차가 글로벌 3위에 이어 전기차 산업의 '퍼스트 무버'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현대차 누적 생산 1억대의 주인공이 아이오닉5라는 것도 이런 점에서 상징적이다.
정 회장은 전기차 개발이 한창이던 2018년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내연기관차 시대에는 우리가 '패스트 팔로어'였지만, 전기차 시대는 모든 업체가 공평하게 똑같은 출발선상에 서 있다"며 "경쟁 업체를 뛰어넘는 성능과 가치로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정 회장의 의지는 현대차그룹 최초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의 성공적 개발과 출시로 이어졌고, 이를 탑재한 아이오닉5·아이오닉6 등 전기차는 '세계 올해의 차'로 선정되는 등 성과를 냈다.
정 회장의 경영 능력은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성공에서도 확인된다.
제네시스는 정 회장이 초기 기획 단계부터 외부 인사 영입과 조직 개편까지 브랜드 출범 전 과정을 주도한 브랜드로, 2015년 11월 출범 이후 7년 10개월 만인 지난해 8월 글로벌 누적 판매 100만대를 돌파했다.
현재 현대차 전체 판매의 5%가량을 차지하는 제네시스는 브랜드 이미지와 수익성 향상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정 회장은 이 밖에도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로봇 등 신기술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입지를 강화할 계획이다.
vivi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