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 수장 폭사 현장엔 "온통 시신뿐…부상자조차 없었다"
"이스라엘군, 지하 18m 벙커 헤즈볼라 본부에 폭탄 80t 투하"
잇단 폭발과 전투기·드론 굉음에 놀란 주민들, 해변 등지서 노숙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모두가 잔해 더미 아래에 깔려 있었다. 부상자는 없었고 그저 시신들만 있었다."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겨냥한 이스라엘군의 대형폭탄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교외 다히예에 떨어진 27일(현지시간) 저녁 현장 부근에 있었던 의사 지하드 사데는 당시 상황을 이같이 전했다.
베이루트 최대 공립병원 간부인 그는 지면을 흔드는 폭음에 놀라 뛰쳐나와보니 자신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의원에서 불과 수백m 떨어진 곳에 있는 주거용 빌딩 최소 6채가 무너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취재진에게 "우리는 붉은색 연기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는 걸 봤다. 건물들이 막 붕괴된 참이었다"면서 사건 현장으로 처음 달려 갔을 때 건물 잔해에 깔린 시신들만 눈에 띌 뿐이었다고 전했다.
이후 끝없이 밀려드는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밤을 지새웠다고 그는 덧붙였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관련 상황에 밝은 소식통을 인용, 이스라엘군이 지하 60피트(약 18.3m)에 위치한 헤즈볼라 지휘 본부에서 회의 중이던 나스랄라를 제거하기 위해 80t가량의 폭탄을 퍼부었다고 보도했다.
지연신관이 탑재된 폭탄들은 연쇄적으로 폭발하면서 헤즈볼라 본부를 무너뜨렸고, 결국 나스랄라는 이튿날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스라엘군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이튿날 아침까지 무려 11차례에 걸쳐 베이루트 남부 일대에 폭격을 이어갔다.
날이 밝은 뒤 헤즈볼라 본부가 있던 다히예 일대에는 베이루트 주변 고지대에서도 내려다보일 정도로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고 FT는 전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이번 공격으로 최소 33명이 숨지고 195명이 다쳤다고 밝혔지만, 보고되지 않은 사례가 많은 까닭에 실제 사상자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진을 방불케하는 진동과 폭음, 머리 위를 쉴새 없이 오가는 이스라엘군 무인기(드론)의 소음에 놀란 베이루트 남부 지역 주민들은 앞다퉈 피란길에 올랐다.
미국 CNN 방송은 최소 수백가구가 베이루트 주변 해안과 시내 주요 광장 등에서 밤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 자리한 부르즈 알-바라즈네 팔레스타인 난민촌 주민들은 주변 일대에 대한 추가 폭격을 예고하는 이스라엘군의 소셜미디어 메시지를 보고 많은 이가 공포에 질렸다고 말했다.
시리아 출신의 팔레스타인 난민 파티마 차히네는 "아래에선 폭탄이 터지고 위에선 폭격이 이뤄진다"면서 "아이들을 보호하려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 2011년 탈출해 여기로 왔는데, 이곳에서도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해변에서 가족과 함께 노숙하던 레바논 남성 탈랄 아흐마드 자사프는 "세 시간 넘게 학교와 대피소를 돌았지만 빈 공간이 있는 곳을 찾지 못했다"면서 차라리 비교적 안전한 시리아로 가는 방안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베이루트 아메리칸대학 산하 레바논 위기 관측소의 나세르 야신 소장은 28일 "공식적으로 (피란민으로) 기재된 인원은 10만명이지만, 실제 규모는 많게는 25만명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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