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대통령 권력다툼에 볼리비아 민생고는 '뒷전'
모랄레스 前대통령 측, 7일간 국토행진…아르세 대통령 "쿠데타 시도하나"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지난 6월 일부 군 장성의 쿠데타 시도로 국제사회의 이목을 끈 남미 볼리비아에서 전·현직 대통령 간 헤게모니 다툼으로 사회 분열이 심화하고 있다.
14년 장기 집권 뒤 다시 대권 도전을 천명한 에보 모랄레스(64) 볼리비아 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저는) 지지자들과 함께 카라코요에서 수도 라파스로 도보 행진할 것"이라며 "헌법의 틀 안에서 평화적인 방식으로 나아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두 도시 간 거리는 200㎞ 정도다.
'볼리비아 구하기 행진'이라고 이름 붙은 이 일정은 이날부터 일주일 동안 진행된다고 모랄레스 전 대통령 측은 설명했다.
볼리비아 최초 원주민(아이마라) 출신 국가 지도자인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2005년 처음 대권을 잡은 뒤 개헌에 따라 4년 만에 치러진 2009년 대선과 2014년 대선에서 연거푸 승리했다.
이후 4선 연임을 시도한 2019년 대선에서는 부정 의혹이 불거졌고, 이 여파로 14년 재임 뒤 고국을 떠나야 했다.
그는 2020년 다시 치러진 대선에서 같은 당 소속이었던 루이스 아르세(60) 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망명 중이던 아르헨티나에서 귀국했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그러나 지난해부터 계파를 결집해 재집권을 모색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아르세 대통령과는 완전히 틀어졌고, 지지자 간 반목도 극에 달했다.
현지 일간 엘데베르는 '연임 여부와 관련 없이 2차례까지 대통령 임기를 수행할 수 있다'는 지난해 연말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내년 볼리비아 대선 출마는 불가능하다고 보도했다.
좌파인 모랄레스 전 대통령 측은 이와 관계 없이 아르세 대통령을 '우파에 경도된 배신자'라고 힐난하고 있다.
이번 행진에 대해 아르세 대통령은 이날 국영 TV를 통한 대국민 연설에서 "지금까지 나는 당신의 비방을 침묵으로 참아왔지만, 국민 생명을 위험에 빠트리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한 뒤 이번 행진을 '쿠데타 시도'로 간주할 수 있다며 군과 경찰에 라파스 진입 차단을 명령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경우에 따라선 전·현직 대통령 지지자 또는 당국까지 얽힌 무력 충돌 발생 가능성도 예상된다.
브라질·페루·파라과이·칠레·아르헨티나와 국경을 접한 볼리비아는 고질적인 연료난과 보유 외화 부족으로 경제적 침체를 겪고 있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는 2019년 '세계 식량안보와 영양상태' 보고서에서 볼리비아를 중남미 주요 빈곤국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6월 26일 군 일부 세력은 장갑차를 이끌고 대통령궁에 난입,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시민 반발과 군부 내 다른 인사들의 외면으로 3시간 만에 회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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