솅겐의 종말 오나…독일 국경통제 강화에 흔들리는 EU 공동체
선거 노린 '정치쇼' 관측…메르켈식 난민포용책 '관뚜껑 못박기'
EU "예외적 경우에만"…유럽통합 떠받치는 토대에 위험 감지
반이민정서 확산에 오스트리아·덴마크·프랑스 등도 서둘러 빗장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유럽연합(EU) 내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이 모든 국경에서 입국자에 대한 검문을 실시하기로 하면서 자유로운 국경 통행을 통합의 토대로 삼는 유럽 공동체가 흔들리고 있다.
유럽 내 반이민 정서가 확산하면서 오스트리아, 덴마크, 이탈리아, 스웨덴, 프랑스 등 이미 주요 국가들이 이미 국경 검문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과거 유럽의 대표적 난민 포용국이던 독일마저 빗장을 걸어 잠그며 극우 세력의 부상에 무릎을 꿇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 정부는 오는 16일(현지시간)부터 6개월간 독일과 접한 육상 국경 9개 전부에서 통제를 강화한다고 9일 밝혔다.
이에 현재 임시 조치로 통제 중인 오스트리아, 스위스, 체코, 폴란드 국경에 더해 프랑스,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등에도 경찰관이 배치돼 입국자를 검문하고 무단 입국자나 위험인물을 돌려보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결정은 최근 몇 달 새 독일에서 이민자의 흉악범죄가 잇따르고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 위협이 고조되면서 국경 봉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최근 실시된 독일 주의회 선거에서 이민자를 배척하는 정책기조를 지닌 극우 성향의 독일대안당(AfD)이 승리하면서 강경책을 원하는 여론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독일을 비롯해 유럽 29개국이 가입한 솅겐조약은 비준국 간의 국경을 통과할 때 여권검사 등의 절차 없이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한다.
보안상의 구체적인 위협이 있는 등의 긴급한 상황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검문을 실시할 수 있다.
이렇게 결성된 솅겐 공동체는 동일한 보편 가치를 지향하고 경제와 법을 공유하는 EU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통합을 떠받치는 중대한 토대였다.
프랑스와 함께 EU의 쌍두마차로 꼽히는 유럽 최대 경제국 독일의 변심은 그런 면에서 충격으로 다가온다.
영국 가디언은 10일 독일의 조치에 대해 "유럽 내 자유로운 이동에 큰 타격을 주며 EU의 통합을 심각하게 시험에 들게 했다"고 분석했다.
사태가 중대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과감한 결단의 배경에 대한 뒷말도 무성하게 뒤따른다.
일단 독일 정부의 국경통제 강화가 긴급한 필요보다는 국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결정인 것 같다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일부 EU 당국자 및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독일의 결정에 충분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EU 당국자와 외교관들은 가디언에 독일의 이번 조치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면서 이러한 조치는 "분명히 자국내 청중(여론)을 노리고 이뤄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독일 연정이 반이민정서에 편승해 지지도를 높여보려는 심산이라는 얘기다.
독일 통합 및 이주 연구 센터의 마커스 엥글러는 "정부의 의도는 독일인과 잠재적 난민들에게 더는 난민을 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앙겔라 메르켈 정권이 수년 전 100만명에 가까운 이주민을 받아들이며 독일에 뿌리를 내린 난민포용 정책에 관뚜껑 못 박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유럽에서 전반적으로 이주민을 향한 반감과 국수주의가 득세하면서 다른 국가에서도 독일과 같은 경로가 관측된다.
다수 솅겐 조약 가입국들이 뚜렷한 보안 위협이 없는데도 국경에서 검문을 강화하는 사례가 늘면서 조약의 구속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로부터의 안보 위협과 망명 증가를 이유로 들어 슬로바키아와 체코, 슬로베니아, 헝가리 국경에서 검문을 실시하고 있다.
덴마크도 가자지구 전쟁과 러시아 스파이 위협 등을 이유로 독일로부터 오는 해상 및 육상 국경에서 검문을 실시하고 있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등도 국경에서 검문을 실시하고 있다.
솅겐조약의 보증 기구인 EU 집행위원회는 이날 회원국들이 "심각한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경 검문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해당 조치는 필요하고 비례적인 선에서 이뤄져야 하며 엄격히 예외적인 경우로 남아야 한다"고 원칙을 다시 강조했다.
독일 싱크탱크 유럽안정계획(ESI) 의장 제럴드 크네우스는 독일의 국경통제 강화 조치를 두고 "어떤 효과를 의도하고 이뤄지는 내부 국경 통제는 솅겐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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