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부품 필요했던 러, 인도와 비밀 무역채널 구축"
FT 보도…석유수출로 번 '루피화'로 인도서 핵심제품 조달 시도
세관신고서엔 의심쩍은 거래…미국, 인도기업에 제재 위험 경고
(서울=연합뉴스) 신재우 기자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전쟁에 필요한 핵심 전자 제품 등을 확보하기 위해 인도에 비밀 무역 채널을 구축한 정황이 확인됐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T가 입수한 러시아 정부 서신에 따르면, 러시아 산업무역부는 지난 2022년 10월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핵심 전자 제품 확보를 위해 약 820억루피(약 1조3천억원)를 지출하는 비밀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은 산업무역부가 러시아 보안당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무역진흥 컨소시엄에 보낸 서신에서 확인됐는데, 러시아 은행에 쌓여 있는 인도 루피화를 사용하는 것이 목표였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서방의 제재를 받으면서 석유 판매길도 막혔으나, 인도가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러시아산 석유를 싼값에 사들이면서 러시아로 막대한 루피화가 들어온 상태였다.
서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인도를 "이전에는 비우호적인 국가로부터 공급받던" 주요 물자를 조달할 수 있는 대체 시장으로 여겼고, 필요한 부품을 확보하기 위해 인도에 시설을 건설하는 것도 검토했다.
미사일과 드론, 전자전에 필수적인 제품을 외국에서 의존하고 있었던 러시아로서는 안정적인 공급망이 필요하던 시기였다.
서신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산업무역부 내 '무선전자' 부서 부국장인 알렉산더 가포노프는 러시아 내에서 비밀스럽게 움직이고 있던 컨소시엄에 인도에서 핵심 부품을 확보할 계획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요청에 컨소시엄 대표인 비담 포이라는 러시아 전자업계 및 "관련한 인도 정부와 민간 업체들의 대표들"과 함께 루피화를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개발했다고 답했다.
그는 루피화 소비와 이중용도 품목(민간 및 군사적 용도가 있는 상품)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 서방의 감시에서 자유로운 '러시아-인도기업 간 폐쇄형 결제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썼다.
그는 또 인도에서 최대 1천억루피(약 1조6천억원) 어치의 전자장비용 부품을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고, 컨소시엄 관련자들이 인도에서 러시아가 설계한 부품을 생산하기 위한 시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도 내 공장 설립을 위한 합작 투자에 향후 자금이 사용될 수 있다고 보고했다.
FT는 러시아가 이 계획을 어느 정도까지 실행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세관신고서에는 계획과 관련됐을 것으로 의심되는 품목이 확인된다고 전했다.
일례로 한 인도 기업은 러시아에 최소 490만달러(약 66억원)어치의 드론 등 전자장비를 공급했는데, 거래는 루피화로 결제됐다.
미국은 러시아와 인도의 밀착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
월리 아데예모 미국 재무부 부장관은 지난 7월에 인도의 3대 기업 단체에 편지를 보내 "러시아의 군 산업 기반과 사업을 하는 모든 외국 금융 기관은 제재받을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러한 높아진 제재 위험은 거래에 사용된 통화와 관계없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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