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美인질은 협상 후순위?…애타는 가족들 탈레반 접촉 시도
60대 남성 카불 여행중 2년째 억류…"중요도에서 뒷전" 분통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아프가니스탄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에 2년째 억류 중인 미국인의 가족이 정부 주도 협상이 진척을 보이지 않자 직접 탈레반과 접촉에 나섰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구금 중인 미국인 조지 글레즈먼(65)의 가족들은 정부가 석방을 위한 충분한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며 백악관에 자신들이 탈레반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그의 석방을 얻어내겠다고 통보했다.
글레즈먼의 가족을 대표하는 조지 테일러는 지난주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로저 카스텐스 미국 인질 문제 담당 특사에게 "우리는 조지(글레즈먼)를 되찾기 위해 카타르 도하에서 탈레반과 회의를 마무리하는 과정에 있다"라고 쓴 이메일을 보냈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 정부가 글레즈먼의 억류에 별 중점을 두지 않아 감옥에서 그의 건강이 악화했다고 비판하면서 "조지의 석방이 가능하도록 필요한 용기와 리더십을 보여 달라"라고 호소했다.
델타항공 정비사였던 글레즈먼은 지난 2022년 12월 5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여행하던 중 탈레반에 체포됐다.
그가 구금된 지 10개월 후, 미 국무부는 글레즈먼이 부당하게 억류된 것이라고 규정하고 그의 석방을 위해 광범위한 수단을 동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글레즈먼의 가족은 조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충분한 정보와 협조를 얻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해 탈레반과 직접 연락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미 국무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글레즈먼 가족에게 미국 당국자들과 탈레반 회동을 앞둔 만큼 가족들의 탈레반 접촉은 글레즈먼을 석방하려는 노력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테일러는 일단 접촉을 보류하겠지만, 당장 진전이 없다면 직접 도하로 날아가 탈레반 대표를 만나겠다는 입장이다.
글레즈먼의 사례는 바이든 행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외국에 억류된 인질의 가족과 정부 간 폭발 직전의 갈등을 반영한다고 WSJ은 진단했다.
가족들은 인질에 대한 최신의 정보를 원하지만,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많은 사안을 비공개로 유지한다.
글레즈먼을 포함한 일부 인질 가족들 사이에서는 외국 억류 인질들 사이에 우선순위가 있다는 인식이 점차 커지고 있다. 정부와 언론의 관심을 많이 받는 '유명 인질'이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1일 미국은 러시아와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인 24명을 동시에 석방하는 방식으로 수감자를 맞교환했고, 이로써 간첩 혐의를 받고 러시아에 수감 중이던 에반 게르시코비치 WSJ 기자 등 3명의 미국인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글레즈먼의 부인인 알렉산드라는 남편의 사건이 중요도 측면에서 낮은 순위로 인식되는 것을 우려한다고 전했다.
역시 지난 2022년 아프가니스탄에 구금된 미국인 라이언 코벳의 가족도 미국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코벳은 2022년 8월 10일 아프간에서 탈레반에 붙잡혀 글레즈먼과 같은 감옥에 수감돼 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인질들 사이에 중요도에 차이가 있다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해서 계속 부인해왔다.
숀 세이벳 백악관 NSC 대변인은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는 글레즈먼과 전 세계에 부당하게 억류돼 인질로 잡혀있는 모든 미국인의 석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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