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전 우려 레바논 주민 "14년째 내전 시리아가 더 안전"

입력 2024-09-02 15:47
전면전 우려 레바논 주민 "14년째 내전 시리아가 더 안전"

비자 없이 국경 넘을 수 있고 아파트 임차료도 상대적으로 싸



(서울=연합뉴스) 김상훈 기자 = 이스라엘과 시아파 무장 정파 헤즈볼라 간 전면전 발발 우려 속에 일부 레바논 주민들이 14년째 내전 중인 시리아로 대피를 고려하고 있다고 AP 통신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남쪽 국경에서 11개월 가까이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이 11개월 가까이 진행되는 동안 큰 불안감을 느끼지 못했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외곽 주민들은 그러나 지난 7월 말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헤즈볼라 최고 지휘관 푸아드 슈크르 등이 사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전면전에 대비해 피란처를 알아보고 있다.

평소라면 이들은 레바논 내에서 이슬람 시아파 집단 거주지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여겨지는 수니파 무슬림 및 마론파 기독교도 집단 거주 지역 등을 후보로 고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은 요즘 시리아로 이주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레바논 시민의 경우 비자 없이 국경을 넘어 시리아에 갈 수 있는 데다 아파트 임차료도 국경 너머가 훨씬 싸기 때문이다.

베이루트 주민 자흐라 가다르는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헤즈볼라 지휘관 슈크르가 사망한 뒤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이주를 고려했다고 한다. 그의 가족은 처음엔 레바논 내 다른 지역을 새 이주처로 고려했지만, 전면전에 대한 우려와 가파르게 치솟는 주택 임차료 때문에 좌절했다.

가다르는 "가족이 편안하게 지낼 수 없는 수준의 집도 월세가 700달러(약 94만원) 넘는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시리아로 시선을 돌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경 넘어 시리아 북서부 알레포에서는 방 4개짜리 아파트 월세가 150달러(약 20만원)에 불과해 그는 6개월 치를 선불로 주고 계약했다고 한다.

또 시리아 역시 종종 이스라엘군 공습의 목표물이 되기는 하지만, 이란의 지원을 받는 '저항의 축' 일원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은 가자 전쟁 발발 후 본격화한 이스라엘과의 무력 분쟁에서 한발짝 뒤로 물러서 있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이스라엘군의 침공으로 레바논에서 전면전이 시작되면 14년째인 내전이 교착 국면에 빠진 시리아가 레바논보다 더 안전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지난 2006년에도 전쟁을 치른 적이 있다. 당시 이스라엘군이 진격한 레바논 남부는 쑥대밭이 되었고 무려 18만명의 레바논 주민이 시리아로 피신했다.

당시 10대의 나이로 부모와 함께 시리아로 이주했던 라와드 이사는 "전쟁이 끝난 뒤 가족은 레바논으로 돌아왔지만, 부모님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시리아 하마주(州)에 집을 사놓았다"며 "다시 전쟁이 벌어진다면 우리에겐 피할 집이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누이 부부는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가족 피란에 대비해 먼저 시리아 집에 가 있다.

이사는 "전면전에 대비해 베이루트에서 안전한 지역의 아파트를 알아봤는데 기가 막힐 만큼 월세가 높았다. 어떤 집주인은 공유 아파트 내 방 한 개를 쓰는 비용으로 90달러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일하는 언론인 아잠 알리는 지난 7월 30일 베이루트 외곽 다히예 지역 공습 직후 며칠간 많은 레바논 사람이 호텔과 월셋집을 계약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또 자기 집에도 친구의 친구 가족이 머무르기도 했다면서, 상황이 잠잠해진 뒤에 일부는 돌아갔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다마스쿠스에 남아 있다고 전했다.

얼마나 많은 레바논 거주자가 전면전 발발 시 시리아로 대피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레바논 아메리칸대 이주연구소의 재스민 릴리안 디아브 연구팀이 수도권 거주자 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면접 설문조사 결과 최소 20명이 전면전 발발 시 피란지로 시리아를 꼽았다.

하지만 디아브는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시리아로 가는 것을 고려하는 사람들은 그곳에 사업적으로 네트워크가 있거나 가족 또는 친구가 그곳에 있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또 아직은 전쟁 공포가 레바논에서 시리아로 '난민 역이주'를 유발하지도 않았다. 유엔 난민기구에 등록된 77만5천여명의 레바논 거주 시리아 난민 중에서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시리아 내전이 잠잠해지긴 했지만,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반정부 세력으로 몰려 체포될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고, 레바논을 벗어날 경우 난민 지위를 박탈당할 수도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쨌든 전면전 직전까지 갔던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긴장이 지난달 25일의 거친 무력 공방으로 다소 완화됐지만 베이루트 외곽 거주자들은 다시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며 마음을 놓지 못한다.

가다르는 "어떤 경우라도 대안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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