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숙의 집수다] 20년 장기임대 도입…부활 요원해진 아파트 등록임대
국토부 "전세 효용 다했다"…업계 "불확실성 커"
집값 상승에 아파트 등록임대 복원 안할 듯…15만 아파트 매입 등록임대 말소 수순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국토교통부가 민간 전세 제도를 대신해 기업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유형의 기업형 장기 민간임대주택을 도입하기로 했다.
현재 민간 임대시장은 다주택자가 내놓는 일반 전월세가 주를 이뤘다면 앞으로는 20년간 거주할 수 있는 100가구 이상의 대규모 기업형 장기 임대주택을 공급해 기업이 민간 전세시장을 대체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 폐지됐던 아파트 등록임대의 부활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아파트값 상승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국회에 법 개정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부정적 의견을 제시하면서 재도입이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 "강산이 두 번 변하는 20년…정부를 어떻게 믿나"
국토부가 지난 28일 발표한 새로운 형태의 20년 장기 임대주택은 일본의 다이와리빙이나 미국의 실버스타인처럼 기업이 임대주택을 짓고, 장기간 임대 운영도 하는 기업이 집주인인 임대 형태다.
분양전환이 아닌 임대 운영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로, 정부 지원이 없는 대신 임대료 규제를 없애거나(자율형), 임대료 제한은 하되 각종 세제 혜택 등을 주는 형태(준자율형·지원형)로 선택의 폭을 넓혔다.
그러나 정작 공급에 참여해야 할 건설사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그간 5∼10년, 짧게는 2∼4년간 임대를 놓다가 분양 전환을 통해 투자자금을 회수해온 건설사들은 20년간 자금이 묶이는 장기 사업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비자물가지수(CPI)나 5% 상한 없이 임대료를 자유롭게 책정한다 해도 임대 수입만으로 높은 땅값과 건설비를 보전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20년 뒤에는 주택이 낡아 분양 전환을 하거나 통매각을 하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기업들은 20년 임대 기간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박근혜 정부 때 본격적인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으로 도입된 '뉴스테이'가 초기에 대형 건설사들의 참여로 인기를 끌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고가 임대료와 건설사 특혜를 이유로 규제가 강화되면서 사업을 포기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건설사 대표가 전문경영인들로 재임 기간에 실적을 내야 하는데, 이런 장기 투자 사업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특히 20년 동안 정권이 몇 번이 바뀌고, 그때마다 임대 정책과 지원 혜택이 달라질 수 있는데 사업 리스크가 크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4년에도 전세시장 안정을 위해 주택임대관리업을 도입하면서 임대시장의 기업화를 꾀한 바 있다.
당시 일본 최대의 주택임대회사였던 '레오팔레스21'이 모델이 돼 기업이 직접 주택을 건축하고, 임대 관리까지 맡는 사업 유형을 구축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실적은 초라하다. 현재 자체 보유 전화국 부지에 임대주택 사업을 하는 KT나 소규모 개발사업을 겸하는 SK D&D 정도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기업형 임대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
높은 임대료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토부 장관은 전세의 효용이 다했다고 하지만 다수의 임차인은 월세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전세를 선호하는 게 현실"이라며 "기업이 분양전환 없이 운영 수입만으로 수익을 창출하려면 임대료가 높아질 텐데 기존보다 높은 월세를 부담하려는 수요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부동산 전문가는 "높은 보유세는 내기 싫고, 질 좋은 임대 서비스를 받기 원하는 고소득층을 위한 '하이엔드(최상위)급'의 임대주택이 나오면 인기를 끌 것 같다"며 "다만 이런 수요나 공급 물량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토부도 이 때문에 건설사보다는 장기 투자가 가능한 보험사 등 재무적투자자(FI)의 참여가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국토부는 앞으로 기업형 장기 임대를 2035년까지 10년간 10만가구 이상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간 1만가구 수준으로, "전세 시장이 효용을 다했다"는 이유로 제도를 도입했다기에는 소박한 목표치다.
◇ 아파트값 등록임대 부활은 중단…15만가구 3∼4년 내 자동 소멸 수순
정부의 20년 장기 임대 도입과 함께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아파트 매입 등록임대 복원은 사실상 폐기 수순에 놓였다.
국토부는 앞서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2020년 문재인 정부가 다주택자 특혜를 이유로 폐지한 아파트 등록임대사업을 부활하기로 했다.
아파트 등록임대 폐지로 민간임대주택의 재고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임차인이 싼 임대료로 장기간 거주할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복원 추진의 이유였다.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발의한 민간임대주택특별법 개정안에 따르면 전용 85㎡ 이하, 10년 장기 임대 형태로 아파트 매입 임대등록을 허용하되 신규 등록자는 2주택 이상으로 기준을 강화했다.
또 기존 사업자에 대해서는 임대의무기간이 종료되더라도 자동 말소되지 않고 임대사업자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15년 장기 임대를 도입해 수도권 공시가격 9억원 이하, 비수도권 6억원 이하 아파트로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그러나 이달 공개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국토부는 최근 국토위에 "서울·수도권 아파트 매매시장 상승세 확대 등을 고려해 법 개정(아파트 임대등록 복원)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안을 담은 법 개정안에 정부 스스로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낸 것이다.
15년 장기 임대 도입과 관련해서도 "20년 장기 임대서비스의 도입 추진에 중점을 두고 있어 15년 민간 매입임대주택 유형의 신설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국토부 고위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근 아파트값이 상승하면서 아파트 등록임대를 부활할 경우 투기 수요가 몰릴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대신 8·8대책에서 밝힌 비아파트 6년 단기 등록임대 도입 위주로 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인 아파트 등록임대 부활은 사실상 없던 일이 될 공산이 커졌다.
정부의 의지가 없는데 4년 전 아파트 등록임대를 폐기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앞장서서 법 개정을 추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2020년 25만2천684가구였던 아파트 매입임대 등록 가구 수는 신규 등록 중단과 임대 기간 종료에 따른 자동 말소 또는 사업자의 자진 말소로 2021년 말 22만3천227가구로 감소하고, 2022년 말에는 17만9천275가구로 줄었다.
지난해와 올해도 자동 말소 물량은 게속 늘어나 현재 남아 있는 아파트 등록임대 물량은 15만가구에도 못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잔여 물량 역시 등록임대의 길이 열리지 않는 한 최장 8년의 임대 기간이 끝나는 향후 3∼4년 뒤에는 모두 자동 말소 수순을 밟게 된다.
임대사업자 지위 연장을 기다렸던 아파트 임대사업자들은 당장 종합부동산세 등 세 부담이 커지게 됐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부동산R114 여경희 빅데이터연구소장은 "계약갱신청구권이 임대 기간 내 1회만 사용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임대사업자 주택은 최장 8년간 5% 이내로 임대료 인상 폭이 제한돼 전월세 가격이 시세보다 현저히 싼 것이 장점이었다"며 "임차인 입장에선 싼 임대료로 장기 거주할 아파트가 사라지는 만큼 주거비 부담이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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