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권대 진학률, 경제력·지역이 좌우…지역비례선발 필요"
한은 제안…"소득·지역별 진학률 격차의 75∼92%, 부모경제력·거주지 영향"
'특정지역 합격자 비율, 해당지역 학생비율의 0.7∼1.3배' 등 제시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부모의 경제력, 이 경제력이 반영된 거주지역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불평등' 문제가 심각한 만큼 신입생을 지역별 학생 수와 비례해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 과제도 연구하는 '싱크탱크'로서 한국은행이 입시경쟁 과열에 따른 사교육·저출산·수도권 인구집중·집값 상승 등의 해법으로 제시한 이 방안을 과연 정부·학교가 받아들여 실행에 나설지 주목된다.
◇ "소득 최상위층 상위권대 진학률, 최하위층의 5.4배"
한은은 27일 발표한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우선 입시경쟁이 사교육비 증가를 초래하고, 사교육비 부담이 결국 소득 계층과 거주 지역에 따른 진학률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교육종단연구 원시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2010년 고등학교 3학년생 가운데 소득 최상위층(5분위)의 상위권대(상위 8개 대학·의학·치의대·한의대·수의대) 진학률은 최하위층(1분위)의 5.4 배에 이르렀다.
2018년 서울대 진학생 가운데 서울 출신과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출신은 각 32%, 12%를 차지했다. 이 두 집단의 전체 일반고 졸업생 내 비중(16%·4%)을 크게 웃도는 성적이다.
◇ "서울·비서울 서울대 진학률 격차의 92%, 거주지역 효과"
하지만 이런 통계만으로는 '서울·강남에 능력이 뛰어난 부모가 많아 자녀도 우수한 잠재력(지능)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상위권 진학률도 높은 것 아니냐'는 반박이 나올 수 있다.
따라서 한은은 실제로 자녀 잠재력 외 경제력이나 지역 등이 진학률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실증 분석도 진행했다.
앞서 언급된 2010년 고등학교 3학년생의 실제 상위권대 진학률은 소득 상위 20% 집단에서 5.9%, 나머지 집단(소득 하위 80%)에서 2.2%로 확인됐다.
이 3.7%포인트(p)의 격차는 학생의 잠재력(같은 학생의 중학교 1학년 당시 수학 성취도 기준)과 부모 경제력 요소가 뒤섞인 결과로, 잠재력만 보자면 상위 20%에서 최상위 잠재력 집단의 비중(22.3%)이 하위 80%(14.6%)보다 컸다.
그러나 한은이 이런 상위 20% 집단의 잠재력 분포를 그대로 하위 80%에도 적용해 잠재력 변수를 통제해도, 진학률 격차는 3.7%p에서 2.8%p(상위 20% 5.9%-하위 80% 3.1%)로 약 25% 줄어드는 데 그쳤다.
나머지 75%의 격차는 부모 경제력 효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게 한은의 결론이다.
아울러 한은은 전국 시군구를 서울과 비(非)서울로 나누고 학생의 잠재력 순위를 기준으로 2018년도 서울대 진학률을 다시 산출해봤다. 그 결과 서울의 잠재력 기준 가상 진학률은 비서울 지역(0.40%)보다 겨우 0.04%p 높았다.
실제 2018년 서울대 진학률에서 서울(0.85%)과 비서울(0.33%) 간 격차(0.52%p)의 8% 수준이다. 따라서 격차 중 나머지 92%가 거주지역 효과로 해석됐다.
◇ "입시 불평등이 서울 집값·저출산 등의 근본 원인"
한은은 이런 입시 관련 소득·지역 쏠림 또는 불평등 문제를 현재 한국 사회 내 고질적 문제들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다.
상위권대를 향한 교육열이 수도권 인구 집중과 서울 주택 가격 상승을 유발할 뿐 아니라, 수도권 인구 밀도가 높아지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양육비와 주거비 부담 탓에 출산 시기를 늦추거나 자녀 수를 줄이는 경향이 심해진다는 주장이다.
대학 교육 과점에서도 출신 학생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 지역적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밖에 청소년의 학업 스트레스에 따른 정서 불안 등도 과도한 입시경쟁과 관련 불평등의 부작용으로 꼽혔다. 실제로 지난 2018년 이뤄진 만 15세 청소년 대상 '삶의 만족도' 조사에서 31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는 하위권인 27위에 머물렀다.
◇ "지역별비례선발로 사회문제 해결하고 잃어버린 인재 찾아야"
한은은 이런 문제들의 해결책으로서 '지역별 비례 선발제'를 제안했다.
대학이 자발적으로 입학 정원의 대부분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선발하되, 선발 기준과 전형 방법 등은 자유롭게 선택하는 방식이다.
한은이 2018년도 서울대 입시 결과를 바탕으로 특정 지역 합격자 비율을 해당 지역 고등학교 3학년생 비율의 '0.7배 이상 1.3배 이하'가 되도록 조정해보니, 각 지역의 실제 서울대 진학률과 잠재력 기준 진학률 간 격차는 평균 0.14%p에서 0.05%p로 64%나 줄었다.
하향 평준화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실제 서울대 19학번 지역·기회균형 전형 입학생들의 학기별 성적이 다른 전형 입학생들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조사 결과 등이 반박 근거로 제시됐다.
한은이 내놓은 지역별 비례 선발 제도는 앞서 2002년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제안한 '지역 할당제'와 큰 틀에서 같은 내용이다.
한은은 현행 서울대 지역·기회균형전형 등과의 차이에 대해서는 "지역별 비례 선발제는 입학 정원 대부분에 적용돼 낙인 효과가 적고, 대학이 신입생 선발 기준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진학률이 잠재력 기준 진학률에 근접해 '로스트-아인슈타인(Lost-Einsteins;잃어버린 인재)' 현상을 줄일 수 있다"며 "'인재는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관점 아래 이 제도를 통해 구조적 사회문제가 극복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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