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정보수장 "서안 정착민 폭력, 단순 범죄 아닌 테러"
팔레스타인 주민에 위협 일삼는 극우성향 정착민 겨냥 작심발언
"국가지도자 비호 속 살인·방화로 국가 안위 위협…유대주의에 '얼룩'"
극우 국가안보장관 즉각 반발 "해임해야"…국방장관 "맞는 말" 옹호
(서울=연합뉴스) 김상훈 기자 =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에는 '언덕 위의 청년들'(hilltop youth)로 불리는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의 젊은이들이 있다.
성스러운 땅을 더럽히는 팔레스타인 민족을 추방해야 한다는 반아랍 성향의 유명 랍비 카하네의 사상 '카하니즘'에 이념적 뿌리를 둔 이들은 서안에 불법 정착촌(Outpost)을 건설하는 등의 활동으로 팔레스타인 주민의 거주지를 위협해왔다.
특히 지난 2022년 말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을 지닌 극우세력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함께 집권한 이후 이들은 팔레스타인 주민 동네에 들어가 총격을 가하고 불을 지르는 등 대담한 폭력을 휘둘렀다.
그 주도 세력은 미국과 유럽 등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거나 제재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수장이 이런 극우성향 청년들의 폭력이 자치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에 파장이 일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채널 12 방송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국내 정보기관인 신베트의 로넨 바르 국장은 지난주 네타냐후 총리와 각료들 그리고 검찰 총장 등 지도자들에게 이런 우려를 담은 서한을 보냈다.
바르 국장은 팔레스타인 주민을 상대로 살인과 방화, 협박을 서슴지 않는 '언덕 위 청년들'의 행위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테러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건 단순한 범죄가 아니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겁을 주고 공포를 확산시키기 위해 폭력을 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바르 국장은 경찰은 이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고 심지어 일부 국가 지도자들이 이를 방조하면서 이런 범죄가 광범위하게 확산했다면서 "그들은 담뱃불 붙이는 라이터는 물론 국가가 제공한 전쟁용 무기까지 사용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테러가 유대주의와 우리 모두에게 큰 얼룩이 됐다"고 비판했다.
바르 국장은 이어 이들이 정부군을 피해 범죄를 실행하는 단계를 넘어 정부군을 공격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면서, 이는 정부 당국으로부터 이런 행위의 정당성까지 부여받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뿐만 아니라 바르 국장은 '분쟁의 성지'인 동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을 기습 방문한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의 행위도 지적하면서 엄청난 유혈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짚었다.
바르 국장은 "이런 민족주의 지도자들이 국가 안보와 국가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의 서한을 받은 벤-그비르 장관은 당일 안보 내각 회의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갔으며, 바르 국장 해임을 요구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벤-그비르 장관이 지지를 철회할 경우 실각할 수 있는 네타냐후 총리는 아직 이에 대해 구체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 휴전 및 인질 협상 책임을 맡고 있는 바르 국장과 다비드 바르니아 모사드 국장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드러내 왔던 터라 그의 반응에 이목이 쏠려 있다.
반면, 가자 전쟁 출구 전략 등을 둘러싸고 최근 네타냐후 총리와 반목해온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은 바르 국장 편을 들었다.
갈란트 장관은 소셜미디어 엑스(X)에 올린 글에서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벤-그비르 장관의 무책임한 행동에 맞서 신베트 국장과 그의 사람들은 심각한 결과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했다"고 썼다.
그러자 벤-그비르 장관도 엑스를 통해 "나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헤즈볼라를 공격하라"고 맞받아쳤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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