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다시 열린 태국 '탁신 시대', 군부·보수와 '데탕트' 지속될까
군부와 연대 집권 후 상징 레드셔츠 아닌 옐로셔츠 입고 재판 출석 '보수' 러브콜
30대 총리 딸 운명도 예측 어려워…'불만' 보수진영, 또다시 탁신家 흔들 가능성도
(방콕=연합뉴스) 강종훈 특파원 = 탁신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2006년 쿠데타로 축출된 뒤 도망자 신세였던 탁신 친나왓(75) 전 태국 총리가 '화려하게' 부활해 또 다른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정당인 프아타이당이 지난해 집권하면서 해외 도피 15년 만에 귀국했고, 8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사면으로 이미 자유의 몸이 됐다.
측근 세타 타위신 총리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임되며 위기를 맞는 듯했으나, 37세에 불과한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 프아타이당 대표가 역대 최연소 총리로 선출됐다.
왕실모독죄 재판이 남아 있지만, 법원이 심리를 내년 7월로 미뤄 당장은 홀가분한 상태가 됐다.
지난 1년 동안 탁신으로서는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모든 일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왔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다시 열린 전성기가 얼마나 갈지가 관건이다.
이는 탁신과 그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에 이어 탁신가의 세 번째 총리인 패통탄의 운명에 달렸다.
탁신은 여전히 북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강성 지지층을 거느리고 있지만, 전국적으로는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
70대 중반 탁신이 꺼낸 30대 딸 총리 카드는 반전을 위한 승부수로도 해석된다.
2000년대 들어 한 번도 선거에서 패한 적이 없던 탁신계 정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처음으로 전진당(MFP)에 제1당 자리를 내줬다.
전진당은 왕실모독죄 개정 등 파격적인 공약을 내세워 젊은 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프아타이당이 군부 진영과 연대해 집권에 성공했지만 차기는 장담하기 어렵다.
전진당이 헌재에 의해 해산됐지만 국민당(PP)으로 재창당하고 다음 선거를 기약하고 있다.
전진당은 역시 헌재에 의해 해산된 퓨처포워드당(FFP)의 후신이다. FFP 해산 당시 대학가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지만, 전진당 해산 이후에는 조용하다.
반복되는 좌절로 인한 무기력증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개혁은 거리 시위가 아니라 선거를 통해 이뤄야 한다는 학습 효과가 작용한 것으로도 분석된다.
피타 림짜른랏 전진당 전 대표는 당 해산 직후 "오늘만 분노하고, 분노를 투표소로 가지고 가자"고 지지자들을 향해 말했다.
지난 총선 이후 전진당과 동맹을 파기하고 군부와 손잡은 프아타이당은 더는 민주화 세력이나 개혁 세력에 편입되기 어렵다. 세를 유지하려면 보수 대표 정당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지난 19일 왕실모독죄 재판에 출석하면서 탁신이 입은 노란색 셔츠의 의미가 남다르다.
과거 각각 '옐로 셔츠', '레드 셔츠'로 불린 반탁신, 친탁신 세력 충돌로 유혈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레드 셔츠'의 우상인 탁신이 입은 노란 셔츠는 왕실에 대한 충성 맹세이자 군부 진영에 대한 유화적 제스처일 수 있다. 동시에 스스로 보수 진영 지도자임을 선언하는 의미로도 비친다.
패통탄 총리 앞길에도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다.
태국은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현 정권 출범 이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탁신 세력은 과거 포퓰리즘 정책으로 대중의 환심을 샀지만, 이로 인해 물러나 부패 혐의로 기소되는 등 부작용도 컸다.
프아타이당 핵심 공약이었던 국민 1인당 1만밧(39만원) 지급 정책도 반발에 부딪혀 있다.
상황에 따라 세타 총리 해임을 끌어낸 보수 진영과 헌재가 패통탄을 심판대에 올릴 수도 있다.
이미 패통탄 총리가 관련된 탁신 일가 과거 부동산 거래 등을 두고 법적 문제를 제기하려는 세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에서는 쿠데타나 법원 개입 등으로 정당이 해산되거나 정권이 무너진 사례가 수없이 반복됐다.
패통탄 총리는 취임 이후 "아버지나 고모인 잉락 친나왓 전 총리와 같은 운명을 맞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중도 낙마하지 않는다면 남은 임기는 약 3년이다. 탁신가뿐만 아니라 공전해온 태국 민주주의에도 중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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