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경쟁에 태평양 도서국 몸값 올라…정치 갈등되기도"
호주 로위연구소 "19세기 영국·러시아의 유라시아 지역 경쟁 연상케 해"
(자카르타=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이 계속되면서 이 지역 섬나라들의 '몸값'도 함께 올라가고 있다고 호주의 한 싱크탱크가 주장했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 연구소는 21일(현지시간) 발표한 '태평양 도서국의 그레이트 게임' 보고서에서 현재 태평양 도서국의 상황이 19세기 유라시아 전역에서 대영제국과 러시아제국이 경쟁하던 '그레이트 게임'을 연상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태평양 도서국은 그간 경제나 안보, 치안 분야에서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 전통적 우방국의 지원을 받아왔고, 항상 이들의 관심이나 지원이 너무 적다는 불만을 가져왔다.
하지만 중국이 태평양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대규모 경제적·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면서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중국은 최근 몇년 사이 태평양 도서국에 개발 금융과 항만, 공항 통신과 같은 인프라 투자, 외교적 지원 등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를 통해 2019년 이후 솔로몬제도와 키리바시, 나우루 등은 대만과 단교한 뒤 중국과 수교했다. 현재 14개 태평양 도서국 중 대만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국가는 3개국에 불과하다.
중국은 또 솔로몬제도와 안보 협정을 체결해 자국 해군 함정의 입항을 허용하는 등 주요 도서국들과 안보·치안 협정을 통해 군사적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에 미국과 호주는 중국이 태평양 지역에서 이들 국가를 군사 기지화하려 한다고 반발하며 태평양 도서국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호주는 모든 태평양 도서국에 외교 공관을 세웠고, 미국도 바누아투와 솔로몬제도 등에 대사관을 새로 열었다.
또 미국은 파푸아뉴기니 등과 기존에 맺었던 안보 협정을 강화하고 있고, 호주는 최근 투발루와 기후 난민 조약을 체결해 투발루 국민들을 호주로 이주시키기로 했다.
이처럼 태평양 도서국을 놓고 서방과 중국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들 국가가 얻는 이득도 늘어나고 있지만 사회적 불안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친중이냐 친서방이냐를 놓고 정치적 갈등이 생기면서 정치를 넘어 사회적 갈등이 되는 것이다.
솔로몬제도에서는 친중파와 친서방파가 나뉘어 여러 차례 대규모 소요 사태가 벌어졌고,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다.
태평양 도서국의 오랜 결속력이 약화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태평양 도서국은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이라는 모임을 통해 한목소리를 내며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키리바시가 PIF에서 탈퇴했다 재가입하는 등 PIF 안에서도 친중과 친서방으로 갈리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서방과 중국의 경쟁적 지원이 부패한 일부 정치인들 이익으로만 돌아가면서 정작 국민들이 얻는 혜택은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보고서는 "태평양 지역의 부패 정도는 지난 수년 동안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며 "빈곤 감소와 교육, 보건, 기후 대응 등 정말 필요한 분야와 관계없는 전략적 프로젝트나 지역 정치인들의 정치 자금으로만 지원이 흘러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laecorp@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