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 선전이 불지핀 이탈리아 국적법 개정 논쟁

입력 2024-08-21 19:30
파리올림픽 선전이 불지핀 이탈리아 국적법 개정 논쟁

다민족 여자배구 첫 올림픽 금메달 계기로 개정 논의 탄력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다인종·다민족으로 구성된 이탈리아 여자배구 대표팀이 파리 올림픽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내며 더 개방적인 방향으로 국적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우파 연정 파트너인 전진이탈리아(FI)를 이끄는 안토니오 타야니 부총리 겸 외무장관은 21일(현지시간) 보도된 일간지 라레푸블리카와 인터뷰에서 "이탈리아는 변했다"며 국적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강점과 경제적 잠재력은 외부에서 온 사람들을 통합하는 능력에서 나온다"며 "다양한 민족과 인종에 대한 큰 개방성이야말로 국가를 경쟁력 있게 만드는 요소"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에서 국적법 개정은 해묵은 과제다. 새 의회가 들어설 때마다 자국 태생 이주민 자녀의 시민권 취득 요건을 완화하는 국적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별다른 논의 없이 사장되는 일이 반복됐다. 우파 정당들의 반대가 주된 원인이었다.

그러나 제1야당 민주당(PD)이 발의한 국적법 개정안에 우파 연정 파트너인 FI의 대표가 공개적으로 찬성하면서 논쟁에 불이 붙었다.

다만 또 다른 연정 파트너인 동맹(Lega)이 국적법 개정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실제 개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극우 정당인 동맹은 반이민 노선이 정치적 구심점이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아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타야니 부총리는 일각에서 제기된 PD와 밀실 합의설을 부인하며 "나는 PD의 편에 서서 일하지 않는다. 내가 항상 생각해왔던 것이고 우리나라에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국적법 논쟁이 연정의 내분을 가속할 수 있다는 지적에는 "우리는 하나의 정당이 아니며 각자의 생각이 있다"며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내세우고 있을 뿐"이라고 답했다.

지난 6월 유럽의회 선거를 계기로 이탈리아 집권 연정은 사분오열된 모습을 보였다.

멜로니 총리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연임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타야니 부총리는 찬성했다. 동맹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인프라 교통부 장관은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주도해 결성된 반(反)EU 성향의 정치그룹인 '유럽을 위한 애국자들'에 합류했다.

PD가 발의한 국적법 개정안은 이탈리아에서 대부분의 정규 교육을 마친 경우 귀화를 허용해 시민권 취득 시기를 앞당기는 내용이다.

현재 이탈리아에서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이주민 가정의 자녀 약 90만명이 학교 시스템에 등록돼 있다. 이는 이탈리아 전체 학생 820만명의 10.6%에 해당한다.

현행법상 이탈리아에서는 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만 18세가 돼야만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지독한 관료주의 탓에 시민권 취득 절차에 최장 4년여가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이탈리아에서 태어나도 20대 초반에야 비로소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는 셈이다.

스포츠 영재 등 특별한 국가적 인재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예외가 인정된다.

또한 해외에서 태어났고, 이탈리아에 거주한 적이 없더라도 부모 가운데 한쪽이 이탈리아 국적이라면 자동으로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다.

이번 국적법 개정 움직임은 파리 올림픽에서 다인종·다민족 선수로 구성된 여자배구 대표팀이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며 탄력을 받았다.

특히 아프리카계 간판 공격수 파올라 에고누의 활약을 기념하는 벽화가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적법 개정 여론이 커지는 양상이다.

이 벽화는 지난 11일 이탈리아 여자 배구팀이 올림픽에서 우승한 직후 그려졌다. 길거리 화가 라이카는 그림의 제목을 '이탈리아다움'으로 정하고 "인종차별, 증오, 외국인 혐오와 무시를 멈추라"고 촉구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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