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러시아, '발등의 불' 대처하느라 밀착 주춤

입력 2024-08-14 10:51
이란-러시아, '발등의 불' 대처하느라 밀착 주춤

중동·우크라 급변 상황 대처에 상호 지원 여력 축소



(서울=연합뉴스) 김상훈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본격적인 반서방 진영을 구축하며 군사·경제·외교적으로 밀착해온 이란과 러시아의 협력이 급변 정세 대처로 주춤해졌다고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직간접적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양국은 그동안 상대방과 정보와 무기 등 분야에서 지원을 주고받았다.

2014년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부터 서방과 멀어졌고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와 담을 쌓게 된 러시아는 이란에 최신 방공시스템과 항공기 등을 제공했고, 2018년 미국의 핵합의 일방 파기 이후 서방의 제재 대상이 된 이란은 현대전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무인기와 미사일 등을 러시아에 제공해왔다.

그러나 최근 양국은 각자에게 닥친 급변 상황을 대처하느라 분주하다.

이란은 지난달 31일 자국 수도 테헤란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 암살 이후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하고 강력한 보복을 예고했다.

지난 4월 320기의 드론과 미사일을 동원해 처음으로 이스라엘 본토를 타격한 바 있는 이란은 1천600㎞나 떨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타격할 방안을 두고 고심 중이다. 전면전 확대를 피하면서 자국 내 강경파를 만족시킬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러시아도 서방의 무기를 앞세운 우크라이나가 전쟁 발발 2년여만에 가장 큰 규모로 자국 영토를 공격하는 상황에 대응하느라 분주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의 성과를 애써 축소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측은 쿠르스크주에서 이미 74개 마을을 점령하고 계속 진격 중이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그동안 무기를 비롯해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나눠온 양국이 당분간 협력할 여력이 없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분쟁 전문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이란 전문가 알리 바에즈는 "이란은 이스라엘에 대한 통제된 군사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전면전으로 바뀔 위험이 있다. 이 경우 이란은 보유한 모든 미사일이 필요하게 된다"며 "마찬가지로 러시아도 자체 보유한 모든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요구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양국은 상대방의 도움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스라엘 레이히만대의 이란 강사인 메이르 자베단파르는 "이슬람 혁명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는 이란 무기에 의존하는 상황이 됐다"며 "쿠르스크에서 최근 패배 이후 러시아는 그 어느 때보다 이란의 지원을 필요로한다"고 말했다.

서로에게 닥친 사정으로 당장 협력을 미루고 있지만, 러시아와 이란의 협력에서 서방이 극도로 우려하는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중 하나는 이란이 러시아에 탄도미사일을 지원하는 것이다.

지난 2022년 8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테헤란을 방문한 이후 이란은 러시아에 공격용 드론과 포탄 등을 제공해왔다. 그러나 이란은 러시아의 탄도미사일 제공 요청은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란은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이 방어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는 수천기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데, 만약 이를 러시아에 제공한다면 우크라 전쟁의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탄도미사일을 지원할 경우 서방과의 협상 창구마저 완전히 닫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란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럽 싱크탱크 유럽외교협의회(ECFR)의 중동 전문가 엘리 가란마예는 "서방 열강들은 러시아에 탄도미사일을 제공할 경우 제재 완화와 관련된 모든 외교적 다리를 태워 없애겠다는 입장을 이란에 분명히 제시했다. 이란은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자국 관련 정책을 채택할 때까지 레드 라인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서방은 러시아가 핵무기 제조 기술을 이란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미 행정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란의 '핵 돌파구'에 반대한다는 오랜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고 본다.

다만 러시아 안보 당국에서 최근에 이 이슈가 비공개 석상은 물론 공개적인 장에서도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어 서방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러시아 외교·국방정책 평의회 세르게이 카라가노프 명예회장은 지난 2월 기고문을 통해 "핵 비확산에 관한 러시아의 공식 정책을 조만간 바꿔야 할 것"이라며 "왜냐하면 이 정책이 비서방 국가들에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란도 이스라엘 퇴치에 대한 열망을 빼앗긴다면 핵 억제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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