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두리안으로 '인생역전' 동남아 농부들

입력 2024-08-03 07:07
[특파원 시선] 두리안으로 '인생역전' 동남아 농부들

중국발 두리안 열풍 타고 빈곤층에서 억대 수입 자랑하는 부유층으로 변신



(하노이=연합뉴스) 박진형 특파원 = 울퉁불퉁 가시투성이의 난감한 외관에 가스 냄새 같은 미묘한 악취까지 풍긴다.

기자가 넉달여 전 이곳 베트남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두리안은 매우 생소한 과일이었다.

여기 와서 마트 등 곳곳에서 두리안을 접했지만, 아직 친숙해지기는 쉽지 않다.

'과일의 왕'으로 불릴 정도로 강한 맛을 갖고 있지만, 악명 높은 냄새와 과일이라기보다는 크림 같은 특이한 식감을 경험하고 나니 과연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불호가 강하다는 것은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열성적인 팬도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열성적인 팬들이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두리안 산업은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이 수입한 두리안은 143만t, 67억 달러(약 9조3천억원)어치에 달해 전년보다 66% 급증했다.

중국에서는 두리안이 새로운 '부의 상징'으로 떠오르면서 선물용 등으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 덕분에 세계 최대 두리안 수출국인 태국이 중국에 수출한 두리안은 2012년 1억2천800만달러(약 1천750억원)에서 지난해 37억5천만달러(약 5조1천300억원)로 11년 만에 30배 가까이 폭증했다.

두리안은 이 기간 생산량이 180% 불어나 태국 농산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달하면서 쌀·고무·카사바와 더불어 4대 수출 농산물이 됐다.

베트남에서도 2022년 중국 당국의 베트남산 두리안 수입 허가 이후 두리안 산업이 급성장, 태국을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베트남 농업농촌개발부에 따르면 베트남산 두리안의 중국 수출은 2022년 4억2천만달러(약 5천740억원)에서 지난해 21억달러(약 2조8천700억원)로 1년 만에 다섯 배로 부풀었다.

이런 두리안 붐이 계속되는 가운데 VN익스프레스 같은 현지 매체들은 두리안 농사로 '인생 역전'에 성공한 농부들을 조명하고 있다.

응우옌 티 아인 홍은 20년 전 새 삶을 살기 위해 가족과 함께 북부 푸토성에서 중부 닥락성으로 이사 와서 농사 일을 했다.

6년간 고된 노동 끝에 간신히 자신의 땅을 마련한 홍은 두리안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이후 중국발 두리안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그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지난해 그는 두리안 47t을 수확, 비용 약 2억동(약 1천80만원)을 제외하고도 32억동(약 1억7천300만원)의 이익을 냈다.

1인당 연간 국내총생산(GDP)이 4천 달러(약 547만원)인 베트남에서 남부럽지 않은 부유층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닥락성 등 베트남의 두리안 재배 지역에서는 홍과 같이 두리안 붐을 타고 빈민에서 부자로 변신한 농사꾼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에 커피나 고무 같은 기존 작물을 갈아엎고 두리안을 심는 농부들도 많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에서도 이런 '두리안 성공담'은 이제 흔해졌다.

두리안 관련 사업가인 말레이시아의 에릭 찬은 말레이시아 중부 파항주 한 마을의 과거 가난했던 두리안 농부들에 대해 "그들은 모두 집을 나무집에서 벽돌집으로 바꿨고 자녀를 해외 대학에 유학 보낼 수 있게 됐다"고 뉴욕타임스(NYT)에 설명했다.

태국의 두리안 생산 중심지인 중부 찬타부리주는 이제 현대식 주택과 새로운 병원들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두리안으로 쌓은 부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이곳에서 평소 기자가 다루는 기사는 나라 간의 분쟁, 갈등과 같은 부정적인 것이 대체로 많다.

이런 가운데 빈곤층이 스스로의 힘으로 땀 흘려 정직하게 일한 끝에 가난에서 벗어나 성공했다는 뉴스만큼 희망을 주는 기분 좋은 소식도 드물다.

동남아의 수많은 저소득층이 두리안, 또는 다른 그 무엇이든지의 도움을 받아서 풍요를 누리게 되는 성공 스토리가 앞으로 더 많이 들려오기를 기대한다.

j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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