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표심, 트럼프 쪽으로 이탈?…"여론조사 착시 때문일 수도"

입력 2024-07-28 17:58
흑인표심, 트럼프 쪽으로 이탈?…"여론조사 착시 때문일 수도"

트럼프, 민주당 '표밭' 흑인 유권자층에서 최근 지지율 상승 추세

"여론조사에 포함되는 흑인 150∼300명 그쳐 정확도 떨어져"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인 흑인 유권자 일부가 공화당으로 이탈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라 나왔으나 이는 흑인 표심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온다고 2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흑인 유권자층은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으로 2020년 대선 때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몰아주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승리하는 발판을 만들어줬다.

미국 조사기관 퓨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 대선 때 흑인 유권자 그룹의 92%가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는 8%만 표를 던졌다.

하지만 최근 수개월간 여론조사에서는 흑인 유권자층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전만 못 했다. 그에 비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오르는 추세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에서 물러나기 전인 지난 5월 뉴욕타임스(NYT)-시에나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흑인 지지율은 23%였다. 바이든 대통령(63%)보다는 지지율이 뒤지지만 격차가 크게 좁혀졌다.

지난 4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7개 경합주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흑인 남성의 30%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흑인 여성의 트럼프 지지율은 11%로 이보다 훨씬 낮았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두고 흑인들, 특히 흑인 남성들 상당수가 민주당 정책에 대한 실망 등을 이유로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쪽으로 옮겨갔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수치가 흑인 커뮤니티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 못 하는 조사 방법의 한계에서 비롯된 '착시현상' 때문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이 지목하는 문제의 핵심은 표본 크기다. 보통 1천∼1천500명을 대상으로 하는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흑인 유권자는 150∼300명 정도 포함된다. 어떤 경우에는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아계 등 유색인종 모두가 하나의 인구통계학적 그룹으로 뭉뚱그려진다.

이렇게 표본크기가 작은 설문조사는 오차범위가 커 전체 흑인 표심을 가늠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흑인 정치 전문가인 안드라 길레스피 에모리대 정치학과 교수는 표본이 100명 미만일 경우 오차범위가 ±10%에 이른다면서, 이런 설문조사에서 흑인 유권자의 20%가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답했다면 실제 지지율은 10∼30% 사이라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길레스피 교수는 흑인 200명이 참여한 설문조사에서 3%포인트가 트럼프에게 돌아섰다고 나타난다고 해도 그것이 진짜 변화인지 통계학적으로 확신하기 어렵다면서 "사람들은 충분히 많은 수의 흑인과 이야기하지 않은 채 추측을 쏟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타울러 새크라멘토 캘리포니아주립대(CSU) 교수도 일반적인 여론조사 방법이 "비과학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흑인 몇백명을 두고 전체 그림을 그리는 여론조사의 대표성 부족 문제를 인식하고, 여론조사기관인 흑인유권자프로젝트(BVP)를 설립했다.

BVP가 지난 3월29∼4월18일 흑인 2천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트럼프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 비율은 15%였다. 이는 다른 전국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흑인 유권자 지지율보다 낮다.

타울러 교수는 주류 여론조사 기관들 입장에서 흑인 사회 의견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니며, 일부 기관은 이미 민주당 지지층으로 분류된 흑인 인구 조사에 더 큰 비용을 쓰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제대로 흑인 표심을 반영하지 않은 여론조사 결과가 현실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흑인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이들의 투표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라고 타울러 교수는 지적했다.

기존의 여론조사에서 비롯된 '흑인 남성이 트럼프 쪽으로 기운다'는 인식을 깨뜨리려 행동에 나선 사례도 있다.

지난 22일 흑인 남성 5만3천명이 '흑인 남성과 함께 이기다'(Win With Black Men)라는 화상 회의를 열어 새 민주당 후보로 떠오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위해 130만달러(약 18억원) 이상을 모금했다

이는 전날 '흑인 여성과 함께 이기다'(Win With Black Women) 행사에서 흑인 여성 4만4천여명이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선언하고 세 시간 만에 150만 달러(약 20억7천만원)를 모은 것 못지않은 성과다.

'흑인 남성과 함께 이기다'를 진행한 언론인 롤런드 마틴은 이번 모금을 통해 '흑인 남성들이 투표 성향을 바꿨고, 여성 후보 지지를 거부하며, 정치 행동을 꺼린다'는 고정관념을 불식시키려 했다고 말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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