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화하는 방글라 반정부 시위…방송국 방화에 경찰은 실탄 사용
'독립유공자 자녀에 공직 할당' 추진에 불만 폭발…AFP "25명 사망·1천명 다쳐"
(자카르타=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방글라데시 정부가 추진 중인 '독립 유공자 자녀 공무원 할당제'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가 거세게 확산하면서 사망자도 수십명대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시위대는 국영 방송사에 불을 지르고 셰이크 하시나 총리를 독재자라고 부르는 등 반정부 시위로 확대되는 상황이다. 경찰이 실탄을 사용한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다카트리뷴과 AFP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학생 등 수천명은 수도 다카의 주요 대학들에 모여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일부 시위대는 국영 방글라데시 텔레비전(BTV)으로 향해 방송국 수신 관련 건물과 외부에 주차된 차 수십대에 불을 질렀다. 다카의 재난관리청 사무실과 주요 경찰서, 경찰차들도 방화 대상이 됐다.
시위대는 응급 서비스를 제외한 전국 교통수단의 '전면 봉쇄'를 시행하겠다며 다카 시내 주요 도로와 외곽 고속도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이들은 할당제 폐지 주장은 물론 하시나 총리를 독재자라고 부르며 퇴진을 요구하는 등 시위는 반정부 양상을 띠고 있다. 하시나 총리는 2009년부터 총리를 맡으며 장기집권하고 있으며 지난 1월 야당의 보이콧 속에 치러진 총선에서도 압승해 5번째 임기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은 시위대 해산을 위해 고무탄과 최루탄을 발사했다. 당국도 무기한 휴교령을 내리고, 모바일 인터넷을 차단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여기에 집권당인 아와미연맹(AL)의 학생 지부 회원들이 여당 지지 시위에 나서면서 할당제 반대 시위대와 충돌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대와 경찰·친정부 시위대 간 충돌이 격화하면서 지난 18일에만 1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AFP 통신은 주요 병원을 통해 자체 집계한 결과 18일에만 25명이 사망하고 1천명이 다쳐 치료받았다고 보도했다.
한 병원 관계자는 "이 병원에서 7명이 사망했다"며 "처음 두 명은 고무탄에 맞아 사망한 학생이었지만 나머지 5명은 총상을 입은 사람이었다"고 AFP에 증언했다.
당국은 공식 사상자 수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사상자가 속출하자 볼커 튀르크 유엔 인권 최고 대표는 엑스(X·옛 트위터)에 "모든 폭력 행위와 치명적인 무력 사용은 반드시 조사돼야 하며 가해자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와 평화적 집회는 기본적 인권"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대변인을 통해 방글라데시 정부에 위협이나 폭력으로부터 시위대를 보호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것은 '독립 유공자 자녀 공무원 할당제' 도입 움직임 때문이다.
2018년 방글라데시 정부는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참가자 자녀들에게 공직 30%를 할당하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대규모 대학생 반대 시위로 폐지했다.
하지만 지난달 다카 고등법원은 이 정책에 문제가 없다며 정책 폐지 결정을 무효로 했고, 대학생들이 다시 거세게 반발하며 전국에서 시위에 나서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에서는 안정적이고 상대적으로 보수가 높은 정부 일자리를 선호하다 보니 매년 약 40만명의 졸업생이 공직 3천개를 놓고 경쟁하곤 한다.
이번 결정은 사법부가 내린 것이지만 많은 이들은 사법부는 정부의 '거수기'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하시나 총리가 자신의 지지 세력을 위해 추진하는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하시나 총리도 반대 시위대를 독립 전쟁 당시 파키스탄 군과 협력한 라자카르 군에 비유하면서 노골적으로 할당제 부활을 지지하고 있어 시위대의 공분을 사고 있다.
방글라데시 대법원은 내달 7일 고등법원 판단에 대한 최종 판결을 할 예정이지만, 방글라데시 정부는 격화하는 시위를 이유로 판결을 앞당겨 달라고 요구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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