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극우, 이민 통제 한다지만…기피 업종은 이민자 몫
"식당 직원 모집하면 이민자만 지원…외국인 없이 안돼"
극우 이민 정책 강화 공약에 "가장 낮은 직종에 있는데도 표적"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현 상황으로 봐서는 제가 여기 오래 있지 않을 것 같으니 지금 열심히 이용하세요. 그리고 나중에 샤를 드골 공항까지 저를 에스코트해주세요."
프랑스 파리 마레 지구의 한 식당에서 일하는 알제리인 칼레드(47)는 테라스에 앉은 고객에게 이런 농담을 건넸다.
이민자를 반기지 않는 극우 국민연합(RN)이 이번 조기 총선을 통해 조만간 정부 권력을 쥐게 되면 이민자인 자신은 프랑스 땅에서 살기 어려워질 거라는 뜻이다.
4일(현지시간)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2000년 프랑스에 도착한 칼레드는 파리와 근교에서 불법 체류자로 근무하다 프랑스 여성과 결혼하며 정식 체류 허가를 얻었다.
이후 지금까지 7년 동안 한 식당에서 줄곧 일했다.
칼레드는 "하루에 700명분을 세팅하는 건 힘든 일이다. 일에 찌든 사람과 대기 줄을 선 사람도 다 상대해야 한다. 강인한 정신력도 필요한데 이런 일을 하고 싶어 하는 프랑스인은 많지 않다"고 르몽드에 말했다.
실제 그가 일하는 이 식당 종업원 가운데 프랑스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스리랑카인, 에리트레아인, 앙골라인, 세네갈인, 우크라이나인, 벨기에인 등이 일을 하고 있다.
식당 주인 자비에 드나뮈르는 "직원 모집 광고를 내면 이민자만 지원한다. 주말이나 저녁 늦게까지 일할 각오를 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그렇다"며 "파리에서 레스토랑은 외국인 없으면 운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랑스 통계청(INSEE)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파리를 포함한 수도권 일드프랑스에서는 호텔·레스토랑 직원의 40%, 요리사의 50%가 외국인일 정도로 이민자 노동력에 크게 의존한다.
가정 방문 요양 보호사나 가사 도우미의 61%, 비숙련 건설 노동자의 61%, 경비원의 47%, 육아 도우미의 44% 등도 이민자의 몫이다.
RN의 공약처럼 이민 정책이 강화된다면 이민자 노동력으로 지탱되는 이런 저임금 일자리 분야가 엄청난 영향을 받게 되는 셈이다.
RN은 외국인 부모를 둔 프랑스 영토 출생자가 성년이 되면 자동으로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는 현행 '속지주의'를 폐지하길 원한다.
가족 재결합 이민 제한, 불법 이민자에 대한 체류 허가 승인 중단 등도 공약에 포함돼 있다.
프랑스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이민자 사회는 이런 RN의 공약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칼레드와 같은 식당에서 일하는 스리랑카인 푸헨티란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너무 걱정된다"며 "우리는 프랑스인의 권리를 뺏으러 온 게 아니라 목숨을 구하러 온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에리트레아에서 생물학 교사였던 요하네스(가명)도 "외국인은 많은 분야에서 가장 낮은 직종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표적이 되고 있다"고 성토했다.
한 난민 지원 단체의 대표인 모리타니 출신 하루나 소우는 외국인이 다른 직원보다 더 열악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는 "주방에서 이민자들은 특정 업무와 특정 테이블에만 배정된다. 10년 동안 설거지만 한 사람들도 봤다"며 "사장이 외국인 근로자가 관공서 약속이나 프랑스어 수업에 갈 시간을 주지 않는 등 부당 대우하는 경우도 있다"고 비판했다.
극우 정당의 집권은 이민자에 대한 고용주의 이런 부당 대우를 더 악화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캉 대학의 이민자 노동 전문 연구자인 다니엘 베롱은 "앞으로 이민 정책이 더 엄격해지면 이런 외국인들은 더 오랫동안 불법 체류자로 남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해 이들의 생활 여건은 더 취약해지고 더 열악한 노동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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