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AI 변화 바람 거세"…SK, AI·반도체 키우고 군살 뺀다
중복 사업 정리·운영 개선 등으로 2026년까지 미래 투자 재원 80조원 확보
219개 계열사 '관리 가능한 범위' 조정 공감…7월부터 후속 조치 잇따를 듯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지금 미국에서는 'AI' 말고는 할 얘기가 없다고 할 정도로 AI 관련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SK그룹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선제적으로 AI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 AI와 반도체 분야로 그룹 투자 방향키를 돌렸다. 그룹의 또다른 축인 그린·화학·바이오 사업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질적 성장을 추구하기로 했다.
◇ "이제는 BBC 아닌 AAA"…'선제적 대응'에 방점
30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 주요 경영진이 지난 28∼29일 한 자리에 모여 진행한 경영전략회의는 SK그룹의 연례행사 중 하나지만, 작년 말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판 이후 사업 리밸런싱(구조조정) 움직임이 본격화하며 회의 전부터 재계 안팎의 이목이 집중됐다.
일각에서는 계열사간 합병안 등이 이 자리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으나, 이번 회의에서 SK 경영진은 미래 준비를 위해 선제적으로 '운영 개선' 등을 통해 그룹 체질을 바꾸고 투자 여력을 확보하자는 데 의견을 모으는 데 집중했다.
SK 측은 '선제적 대응'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다.
SK 관계자는 "'글로벌 치킨게임'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비바람이 와도 견딜 수 있는 재무구조를 탄탄하게 가져가야 한다"며 "그간 벌려놓은 사업을 정리하고 핵심 사업 위주로 재편해 난제에 대한 묘수를 찾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특정 회사 얘기를 했다기 보다는 전체적인 방향성에 대해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안다"며 "지난 3∼4년간 그룹 투자 방향이 그린·환경·신재생에너지 등에 집중됐다면 이 같은 투자 관성을 그룹 전체적으로 일사분란하게 AI와 반도체 분야로 트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회의에서는 AI 관련 얘기가 가장 많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SK 관계자는 "그동안 그룹의 전체적인 사업 방향이 'BBC'(배터리·바이오·반도체)였다면 이제는 'AAA'(AI·AI·AI)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AI와 관련된 얘기가 주를 이뤘다"고 전했다.
현재 미국 출장 중인 최 회장은 "그룹 보유 역량을 활용해 AI 서비스부터 인프라까지 'AI 밸류체인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며 AI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앞서 최 회장은 지난 27일 자신의 인스타그랩에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와 함께 촬영한 사진을 올리고 "AI라는 거대한 흐름의 심장 박동이 뛰는 이곳에 전례 없는 기회들이 눈에 보인다"며 "모두에게 역사적인 시기임에 틀림없다. 지금 뛰어들거나, 영원히 도태되거나"라고 적기도 했다.
그룹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에 반도체 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이를 통해 AI와 반도체 밸류체인에 관련된 계열사 간 시너지를 강화하고, 'AI 밸류체인 리더십' 확보에 나선다는 의미다.
SK는 수익성 개선과 사업구조 최적화, 시너지 제고 등으로 2026년까지 80조원의 재원을 확보해 AI와 반도체 등 미래 성장 분야 투자와 주주환원 등에 활용하기로 했다. 미래 성장 사업간 시너지에 우선 순위를 두고, 나아가 AI 밸류체인 리더십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의 경우 2028년까지 향후 5년간 총 103조원을 투자하고, 이중 약 80%에 해당하는 82조원은 현재 시장 주도권을 쥐고 있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AI 관련 사업 분야에 투자하기로 했다.
SK그룹은 앞서 첫 확대경영회의(경영전략회의의 이전 명칭)를 열었던 2015년에도 SK하이닉스의 이천 M14 반도체 생산라인 장비투자와 신규 공장 2곳 증설에 46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최 회장은 당시 "현 경영 환경의 제약요건에서 과감히 탈피해 투자 시기를 앞당기고 투자 규모를 확대하는 등의 공격적 투자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이를 위해 혁신적이고 창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SK그룹은 산재한 에너지 자원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기반 기술인 에너지 설루션 분야에 강점이 있는 만큼 이 분야의 성장 기회도 모색할 방침이다.
◇ '운영 개선' 속도…219개 계열사 '관리 가능한 범위'로 조정
이날 회의에서는 연초부터 각 사별로 진행 중인 '운영 개선'(Operation Improvement) 강화와 포트폴리오 재조정 등을 통한 재원 확충 방안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80조원의 재원을 마련할 구체적인 방안은 따로 공개하지 않았다.
운영 개선은 기존 사업의 효율을 높이고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제반 경영활동이자 경영전략으로, 수율 개선이나 가동률 극대화, 생산성 향상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최창원 의장은 그간 본질적으로 회사를 잘 운영하고 경영을 잘 하는 게 중요하다며 운영 개선을 강조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SK는 이번 회의에서 운영 개선을 통해 3년 내 30조원의 잉여현금흐름(FCF)을 만들어 부채비율을 100% 이하로 관리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SK그룹의 부채비율은 91.1%로, 삼성(118.8%), 현대차(93.6%), LG(103.6%), 롯데(125.8%), 한화(314.6%) 등 주요 그룹과 비교하면 낮은 편이다.
작년 말 최 회장의 '서든 데스'(돌연사) 언급과 최 의장의 등판 이후 방만 경영, 중복 투자 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그룹 전반의 위기감이 커지기는 했지만, 이는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취지라는 것이 SK 측의 설명이다.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그간의 중복 투자를 해소하고 비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등의 과정에서 계열사 숫자도 '관리 가능한 범위'로 줄일 계획이다.
현재 SK의 계열사 수는 219개로, 전년(198개) 대비 21곳 늘었다. 삼성(63개)이나 현대자동차((70개), LG(60개) 등 주요 그룹과 비교하면 과도한 숫자다.
투자전문회사 SK스퀘어의 경우 SK하이닉스를 비롯해 11번가와 SK플래닛 등 23개 기업을 자회사로 두고 있으나, 이중 18개 회사가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다. SK스퀘어의 연간 영업손실은 2조3천397억원에 달했다.
이에 따라 경영전략회의 이후 자회사간 합병과 비수익 계열사 및 자산 매각 등의 후속 작업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이미 SK네트웍스는 SK렌터카를 8천20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고, SK㈜도 베트남 투자 지분 매각을 통해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특히 미래 성장동력 중 하나로 꼽은 배터리 사업을 살리기 위해 SK이노베이션과 SK E&S 간 합병, SK온과 SK엔무브간 합병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된 만큼 향후 이 같은 방안이 보다 구체화될 가능성도 크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과 주주를 비롯한 이해관계자 설득 작업도 선행돼야 하는 만큼 SK는 향후 각 사 이사회 등을 거쳐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7월부터 후속 조치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사업을 담당하는 SK온은 성민석 최고사업책임자(CCO·부사장)가 영입 10개월 만에 보직 해임되는 등 조직 개편과 임원 축소 등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으로 자리를 옮긴 데 이어 최 수석부회장의 측근인 최영찬 사장이 내달 1일자로 SK E&S 미래성장총괄 사장으로 발령나면서 향후 역할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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