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란대선] 모스크서 한표…투표지에 후보이름 볼펜으로 써

입력 2024-06-28 23:20
[현장@이란대선] 모스크서 한표…투표지에 후보이름 볼펜으로 써

일찍부터 시민 몰려…이란 국기 두르고 "이슬람혁명" 외치기도



(테헤란=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이란 대통령 보궐선거일인 28일 오전부터 테헤란 중부 호세이니예 에르샤드 모스크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이란에서 모스크는 종교 시설이지만 대선, 총선 땐 투표소 역할도 한다.

아이를 데려온 젊은 부부, 3대가 함께 온 대가족 등 여느 나라 투표소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슬람권은 대체로 공공장소에서 남녀 구별이 엄격한 편이지만 이곳에선 남녀가 자연스럽게 섞여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권총과 소총으로 무장한 채 모스크 입구를 지키는 경찰관들에게 문화종교부 외신국이 발급한 기자증과 취재허가증을 제시하고 모스크 안까지 들어가 이란 시민들이 한표를 행사하는 장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모스크에 들어서자 대선 후보 6명의 사진과 이름, 기호가 인쇄된 벽보가 곳곳에 보였다. 투표일 직전 사퇴한 알리레자 자카니 테헤란 시장 등 2명의 이름 위엔 붉은 펜으로 죽죽 줄이 그어져 있었다.

이들의 후보 사퇴를 알리는 선거관리 당국의 공식 안내문은 보이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먼저 신분증을 꺼내 테이블 너머에 앉은 선거관리 당국 직원에게 보여줬다.

신분증은 결혼 여부와 가족의 신원 같은 세부 정보가 모두 담긴 수첩형과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비슷한 카드형 2가지 형태다. 이란 시민은 보통 두 신분증을 모두 갖고 다니지만 투표소에선 한 가지만 제시해도 문제가 없었다.

직원이 신분증을 받아 스캔하면 소형 전자기기에서 일련번호가 생성됐다. 이를 유권자 이름과 함께 투표용지에 기록한 뒤 옆 직원에게 넘겼다.



유권자는 보라색 인주를 오른쪽 검지 끝에 발라 이 투표용지에 지문을 찍었다.

지문 날인까지 마치면 직원이 투표용지 중 성명과 일련번호, 지문 등 개인정보가 있는 부분을 남기고 나머지를 잘라 유권자에게 줬다.

기표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느슨했다'.

우선 비밀투표를 위해 분리된 기표소는 없었다.

그래서 투표용지를 받은 뒤 사람들의 행동은 제각각이었다. 투표소 한쪽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손으로 가리고 기표하거나 일부는 직원이 지켜보는 데도 바로 앞에서 기표하기도 했다. 옆 사람과 상의하는 사람도 보였다.

무엇보다 한국처럼 기호, 소속당, 후보이름이 미리 인쇄된 투표용지의 정해진 칸에 공식 기표용구로 도장처럼 찍는 게 아니라 후보이름과 기호를 직접 볼펜으로 쓰는 방식이 특이했다.

후보 이름의 철자를 벽보에서 재확인한 뒤 꼼꼼히 이름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

이란 관영 미잔통신에 따르면 투표일에 앞서 선거관리 당국은 "후보자 권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성과 이름을 포함한 후보자 세부 사항을 읽기 쉽도록 완전하게 표기해달라"고 공지했다.

후보 이름을 직접 쓰는 만큼 오탈자를 유의해야 한다는 당부다.

투표소 현장의 관리 직원은 후보 이름의 철자가 틀리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후보가 4명뿐인 데다 이름도 완전히 다르다"며 "개표할 때 다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표를 마치면 바로 옆에 마련된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접어 넣었다.

투표함은 반투명 플라스틱 상자였고 뚜껑을 케이블타이 8개로 사방을 묶어 밀봉됐다.

신분증 제시부터 전체 과정에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한 차도르 차림의 여성은 몸에 커다란 이란 국기를 두르고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사진을 목에 걸고 투표소 주변을 한참 서성였다.



파테메 사다트(48)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최고지도자가 허락한다면 팔레스타인에 도움을 주러 가고 싶다"며 팔레스타인의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보수 후보인 사이드 잘릴리 전 외무차관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외쳤다.

투표소 바로 앞에서 선거 당일 특정 후보의 선거운동을 한 셈인데도 그를 제지하는 공무원은 없었다.

그와 함께 온 마르지에(66)는 강경 보수 후보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마즐리스(의회) 의장을 찍고 나왔다며 "갈리바프야말로 이슬람혁명 정신을 이을 사람"이라고 말했다.



부인과 함께 투표하러 나온 중년 남성 레자 카진은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예전에 서울에 가봤는데 동대문시장이 참 좋았다"며 반가워했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란과 한국은 사이가 좋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 아쉽다"며 외국과 외교관계를 개선해 경제난을 해소하려면 중도·개혁 성향의 마수드 페제시키안 의원이 당선돼야 한다고 했다.

직장 동료와 함께 서 있던 라이사는 "특별한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페제시키안이 좋은 사람 같다"고 말했다.



처음 참정권을 행사한다는 파흐테메(18)는 생년월일이 적힌 신분증을 들어 보여줬다. 그는 곁에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더니 "나도 잘릴리를 찍을 것"이라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투표소 앞에서 부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던 루할라(35)는 "라이시(전 대통령)의 뒤를 이을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할 것"이라며 일단은 잘릴리를 선택했지만 결선투표에 갈리바프가 오른다면 그에게 표를 주겠다고 했다.



대선 투표는 오늘 오후 6시에 종료되지만 이란 당국은 투표율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이튿날 새벽까지로 연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내달 5일 다득표자 2명을 놓고 결선 투표가 치러진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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