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R&D 예산 정부는 '역대급'이라는데… 과기계는 '떨떠름'
"구체적 수치·부작용 해소방안 없어"…"물가 감안하면 삭감" 비판도
(서울=연합뉴스) 조승한 기자 = 24조8천억원 규모로 책정된 내년도 주요 연구개발(R&D) 예산에 대해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를 강조하고 나섰지만, 연구 현장에서는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예산 확대는 환영하지만, 지난해 R&D 예산 대규모 삭감 사태로 현장의 어려움이 여전한데 예산을 국제협력 R&D 등 신규 과제 편성에 집중하고 중단위기에 놓인 계속과제 복원과 같은 현장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매년 주요 R&D 예산 배분·조정안에 담겼던 주요 사업별 예산 변화 등이 사라져 구체적 내용 파악이 힘든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오경수 중앙대 교수(기초연구연합회 총무이사)는 27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기존에는 6월이면 세세한 예산 수치가 나왔는데 올해는 전혀 구체적이지 않다"며 '역대 최대 예산'의 내용에 의구심을 표시했다.
특히 현장의 우려가 컸던 기초연구 분야에서도 예산은 확대됐지만 '잘하는 연구자는 더 잘하도록' 하는 수월성을 강조하면서 보편성과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조정안에 따르면 상위 30% 우수연구자 후속 연구 지원, 국가 전략육성 특성화 기초연구 프로그램 신설, 전략정책 분야 지정 후 연구를 지원하는 '국가아젠다기초연구' 등이 기초연구 사업에 포함됐다.
오 교수는 "기초연구에서도 '선택과 집중'이라는 개념이 들어갔다"며 "정치적 이해 타산이 들어간 개념이라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신규 연구 과제 수를 1년에 2천 개를 줄였으면 3년이면 6천 명이 연구를 못 하게 된다"며 "여기에 대한 답을 달라고 하니 기초연구에서 (연구자들이) 원하지 않고 정부가 원하는 분야를 지정해 연구하는 방식을 이야기하는 등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는 계속 과제 삭감 등으로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데 이런 예산 반영이 없어 지난해 부작용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도 "예산이 넉넉한 상황도 아닌데 노력은 가상하지만, 작년에 무리하게 예산을 삭감하며 현장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 현장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도전형 연구처럼 새로운 사업들을 들고나오는데 지금은 좀 치유가 필요한 시간 아닌가 한다"며 "절실하게 대책이 필요한 상황인데 그런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또 "늘리기 위해 애를 쓴 것 같지만 조각조각 늘려놓은 것도 아쉽다"며 "의대 증원 문제 등으로 과기계가 쑥대밭이 되고 있는데 그냥 돈만 주면 되는 것 아니냐 싶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과기정통부는 계속 과제의 경우 부처별로 판단해 복원 여부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부처별로 가용 재원을 기존 과제를 충실히 하는 데 쓸 것이냐 신규 과제를 할 것이냐 판단해 반영됐다"며 "기초연구의 경우는 그런 부분을 상당히 해소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내년 R&D 예산이 대규모 삭감 사태 전인 2023년과 비교해 1천억원만 늘어난 '턱걸이 증액' 예산인 데다, 이마저도 이날 공개되지 않은 향후 반영분을 포함한 것이라 정부가 '목표치'를 정해놓고 예산을 꿰맞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자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2023년 대비 4.2%, 1조원을 삭감한 것"이라며 아직 반영되지 않은 3천억원 규모 사업을 포함하는 등 '말장난식' 예산이라고 질타했다.
황 의원은 "정부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전 R&D 예산을 제대로 복원해내고 'R&D 추경'에도 전향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shj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