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3시간 천하…국민 냉소 속 막내린 '라이브 쿠데타'
육군사령관, 병사·장갑차 동원해 대통령궁 기습 점거
대통령 억류하고 유튜브로 반란 과정 버젓이 생중계
해군·공군에 무시당해…체포 뒤 "대통령 자작극'"주장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대낮에 버젓이 이뤄진 볼리비아의 쿠데타 시도는 처참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수도 라파스 도심 대통령궁에 무장한 군인과 장갑차를 투입해 대통령을 억류했지만 아무 명분도 지지를 얻지 못한 채 해산당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26일(현지시간) 오후 3시께 라파스 시내 무리요 광장에 진압복을 갖춰 입은 일군의 병사들이 집결했다.
이들은 장갑차로 광장과 맞닿아 있는 대통령궁 입구를 들이받고 내부 진입을 시도했다.
쿠데타를 주도한 건 볼리비아군 육군 수장이었던 후안 호세 수니가 장군이었다.
대통령궁 내부에 들어선 그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수하들에게 둘러싸인 채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이 이끄는 현 정부를 거세게 비난했다.
"소수만을 위한 게 아닌 진짜 민주주의를 회복하려고 군부가 일어섰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은, 우리 국민에겐 미래가 없습니다. 군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싸울 용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수니가 장군은 민중봉기와 쿠데타 기도 등 혐의로 투옥된 야당 지도자 루이스 페르난도 카마초와 자니네 아녜스 전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정치인과 군부 인사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는 대통령궁 안에 있던 아르세 대통령과 직접 대면하고 이를 호기롭게 공개하기도 했다.
아르세 대통령은 즉각 병사를 물리라고 요구했으나 수니가 장군은 이를 거부했다.
권력 강탈을 위한 이 같은 반란의 과정은 현지 언론과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국민에게 전해졌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라이브 쿠데타에 대한 볼리비아 국민, 군부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주요 노동자 단체를 비롯한 볼리비아 각계에선 반대 성명이 빗발쳤다.
국제사회에서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물론 브라질과 멕시코 등 주변국 정상들을 중심으로 규탄이 잇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니가 장군은 고립무원에 몰린 처지를 눈으로 확인했다.
아르세 대통령이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지휘부를 전격 교체하자 대통령궁을 점거했던 병사들은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전원 철수했다.
군인들이 사라진 무리요 광장에는 경찰이 진입해 질서회복에 나섰다.
그 사이 광장에 나선 아르세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쿠데타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아르세 대통령은 "볼리비아 국민 만세, 민주주의 만세"를 구호처럼 외쳤다.
중무기를 앞세운 쉽게 성공하는 듯 보이던 쿠데타 시도가 불과 3시간 만에 실패로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경찰에 체포될 처지가 된 수니가 장군은 연행 직전 취재진들에게 음모설을 제기했다.
그는 "대통령이 내게 상황이 매우 엉망이라고 말했다. 이번주가 매우 중요할 것이고 자신의 인기를 높이기 위해 뭔가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면서 쿠데타 시도가 아르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자작극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쿠데타 실패 이후 말이 바뀐 까닭에 수니가 장군이 당초 이러한 사태를 벌이게 된 동기는 아직 명확히 규명하기 힘든 실정이다.
앞서 현지 언론은 수니가 장군이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2025년 차기 대선에서 당선된다면 군이 나서서 끌어내릴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지난 25일 직위해제됐다고 보도했다.
볼리비아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인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2006년부터 2019년까지 집권하다가 부정선거 논란이 거세게 일자 사퇴했고, 그의 정치적 후계자인 아르세 현 대통령이 후임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현재 아르세 대통령과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가 됐고, 경제난과 야권 지도자의 잇따른 투옥으로 정정불안이 심화해 왔다.
수니가 장군의 '자작극' 주장에 대해 볼리비아 정부 핵심 인사인 에두아르도 델 카스티요 장관은 "그들은 모든 신뢰를 잃었다"고 반박했다.
카스티요 장관은 이번 쿠데타 시도로 모두 9명이 총상을 입었다고 덧붙였다.
마리아 넬라 프라다 테하다 대통령부 장관도 자작극 주장은 "전적으로 거짓이고 터무니 없다"면서 쿠데타가 실패한 건 그저 해군과 공군이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라고 말했다.
볼리비아 검찰청은 이날 저녁 수니가 장군을 비롯한 쿠데타 시도 연루자 전원을 대상으로 수사를 개시했다고 밝히면서 '최대한의 처벌'이 이뤄지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1825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볼리비아는 이후 현재까지 무려 190차례에 이르는 쿠데타를 겪었다.
이처럼 쿠데타가 빈번히 벌어지는 까닭에 군부 내부에선 쿠데타를 막으려다 새 정부의 숙청 대상이 될 수 있다는데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은 편으로 알려졌다.
볼리비아 정치 전문가 카를로스 사베드라는 수니가 장군이 벌인 이번 사태의 경우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군인 소수의 모험적 행위'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의 다른 어떤 (군) 조직도 동원되지 않았던 걸 볼 때 이번 쿠데타 시도는 수니가의 측근집단이 육군 지휘권을 놓지 않길 원했던 데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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