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이란대선] "경제살릴 사람 뽑혔으면"…선거에 쏠린 테헤란 민심
갑작스러운 대선에 관심 커져…젊은층 냉소 분위기도
(테헤란=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돌발 대선'에 대한 테헤란 시민들의 관심은 꽤 뜨거웠다.
한달 전 대통령의 헬기 추락 급사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선거 분위기를 자극한 듯했다.
25일(현지시간) 오후 테헤란 이맘호메이니 국제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동안 곳곳에 붙은 대선 후보의 현수막은 사흘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실감케 했다.
유력 보수 후보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는 "모든 이란 가족에게 복지카드를"이라는 공약을 현수막에 적었고 후보 6명 중 유일한 개혁 진영 후보 마수드 페제시키안은 "목소리 없는 이들에게 목소리를"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이날 테헤란 중심가 샤흐르 극장 지하철역 앞에서 만난 버스 운전사 에브라힘 사어다트(48)는 "새 대통령은 국제 관계를 잘 풀어나갈 수 있는 유능한 외교 전문가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를 받는 이란에선 미국, 유럽 정부 장관의 말 한마디에 환율이 출렁거릴 정도로 외교는 경제와 민생과 직결되는 문제다.
시아파 이슬람 기념일 '이둘 가디르' 행사로 붐비는 도심 거리에서도 선거 전단과 벽보를 쉽게 볼 수 있었다. 한국처럼 선거관리위원회가 지정한 장소에 등록된 후보 포스터만을 붙여야 하는 규제가 없어 수십장이 벽에 덕지덕지 어지럽게 붙어있었다.
테헤란 시내에서 만나 본 시민들은 너나없이 이번 대선의 '주제'를 경제 회복으로 꼽았다. 2018년 미국의 핵합의 파기 이후 되살아난 서방의 제재에 코로나19 팬데믹이 겹치면서 이란의 민생고는 상당히 심각해졌다.
사어다트의 동료 기사 네마트 미르자기(48)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너무 심하다"고 말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빈곤층을 도와 가난을 몰아낼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소외계층 지원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보수파 갈리바프 후보를 찍겠다고 했다.
지하철역 앞 길가에서 친구와 나란히 앉아 더위를 피하던 루한기즈(52)는 "오늘 저녁 선거 유세를 보러 나왔다"고 했다.
검은색 차도르로 머리와 온몸을 두른 그는 "누구를 찍을지 말해줄 수는 없지만 개혁파 정치인에게 마음이 간다"며 "꼭 투표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올해 3월 이란 총선에서 사상 최저 투표율(41%)을 기록한 만큼 정치 무관심이 클 것으로 지레짐작했는데 투표하겠다고 답하는 시민들이 예상보다는 많은 느낌이었다.
테헤란의 대로변엔 선거를 앞두고 짙은 단색 제복의 경찰, 의장복을 입은 혁명수비대(IRGC) 군인이 배치돼 경직돼 보였지만 대학가는 풍경이 자유스럽고 활기가 돌았다.
히잡을 쓰는 둥 마는 둥 긴 머리칼을 그대로 내보인 채 연인의 손을 잡고 당당하게 거리를 걷는 젊은 여성도 자주 보였다. 아랍의 이슬람권과 달리 '루싸리'라고 부르는 이란의 히잡은 무채색이 아니어도 되고 보통 앞머리를 내놓는다. 심지어 목에 형식적으로 걸치는 여성도 있다.
카페 한쪽 구석에 모여앉은 여성 4명도 모두 히잡을 쓰지 않은 채였다. 시내에서 만난 중년층과 달리 이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이 제로(0)"라고 했다.
자흐라(22)는 "대선이 가까워지니 정부가 투표율을 올리려고 히잡 단속을 느슨하게 하는 것 같다. 투표율을 올려줄 생각이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맞은편에 앉아 줄담배를 태우던 아바스(22)는 "대선을 계기로 경제가 개선됐으면 좋겠다"면서도 "대통령이 대표하는 표면적인 정부 아래에 실제로 국정을 이끄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선거가 별다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28일 대선 1차 투표에서 50%를 득표하는 후보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결선투표에선 보수 진영 후보가 일제히 지지선언을 해 표를 몰아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바스의 고등학교 동창 마흐무드는 "그래도 투표 결과가 작은 것들부터 바꿔놓을 수 있다"며 "이번 대선이 결선투표까지 간다면 그때에는 투표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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