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니 伊정부 명운 걸린 '총리 직선제 개헌' 의회 첫 승인
헌법 전문가 180명 이상 "변종 권위주의 체제 탄생 우려"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정치적 명운을 걸고 추진 중인 총리 직선제 개헌안이 18일(현지시간) 상원을 통과했다.
안사(ANSA) 통신에 따르면 상원은 이날 찬성 109표, 반대 77표로 개헌안을 가결 처리해 하원으로 보냈다.
멜로니 총리는 상원 표결 뒤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정치를 안정시키며 권력 암투를 끝내는 동시에 통치할 사람을 선택할 권리를 시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파시스트 통치를 경험한 이탈리아는 1948년 헌법을 통해 베니토 무솔리니 같은 독재자의 출현을 막기 위해 무수히 많은 견제와 균형 장치를 도입했다.
이탈리아는 상원과 하원이 동등한 권한을 갖고 있고, 정당 및 정치 그룹은 합종연횡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정당이 난립하다 보니 단일 정당이 의회 과반을 점하기 쉽지 않다.
결국 여러 정당이 연합해 정부를 구성해야 했고, 내분과 갈등으로 연정이 무너지는 경우가 흔했다.
멜로니 총리는 이 같은 이탈리아의 만성적인 정치 불안정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에 따라 개헌안을 마련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에서 "1946년 이탈리아 공화국 수립 이후 75년간 무려 68개의 정부를 거쳤다. 정부의 평균 수명은 18개월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에는 총리가 12명 있었다"며 "이것(개헌안)은 이탈리아에서 이뤄질 수 있는 모든 개혁의 어머니"라고 강조했다.
개헌안에 따르면 총리는 5년 임기로 선출된다. 총리 당선자를 배출한 연립 정부에는 상·하원 모두 과반을 확보할 수 있도록 최소 55%의 의석이 부여된다.
제1야당인 민주당(PD)은 이번 개헌안이 "의회와 공화국 대통령의 권력을 약화할 것"이라며 "위험하다"고 비난했다.
180명 이상의 헌법 전문가들은 이날 성명을 내고 개헌이 실현될 경우 권력이 총리에게 집중돼 견제와 균형이 깨지고 어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시도된 적이 없는 변종 권위주의 체제를 탄생시킬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개헌안이 의회의 첫 관문을 넘었지만 개헌 성사 여부는 미지수다.
개헌을 위해서는 상원과 하원에서 두 차례씩 승인을 받아야 한다.
첫 번째 표결에선 과반 찬성만 나오면 되지만 두 번째 표결에선 상원과 하원 모두 3분의 2 찬성을 얻어야 한다.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우파 연합은 상·하원에서 모두 과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3분의 2에는 미치지 못한다.
멜로니 총리는 의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총리 직선제 개헌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그는 다만 내년으로 예상되는 국민투표에서 개헌이 부결되더라도 사임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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