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개혁·임금·이민…佛 정당들 총선 공약 전쟁

입력 2024-06-15 18:54
연금 개혁·임금·이민…佛 정당들 총선 공약 전쟁

左 신민중전선, 정년 연장 폐기·최저 임금 인상 강조

극우 국민연합, 속지주의 폐지·국경 통제 강화 약속

마크롱 "두 극단 공약, 프랑스 경제에 큰 위험" 비판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프랑스 조기 총선 1차 투표가 보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정당마다 노선을 선명히 드러내는 공약을 발표하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좌파 연합과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극우 국민연합(RN)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여당이 추진한 정책 상당수를 폐지하거나 수정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마크롱 대통령은 두 진영의 공약 때문에 프랑스 경제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몽드 등에 따르면 좌파 4개 정당(굴복하지않는프랑스·사회당·녹색당·공산당)의 연합체인 신민중전선(NFP)은 총선에 승리해 집권할 경우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해 진통 끝에 밀어붙인 정년 연장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 개혁안은 정년을 현행 62세에서 2030년까지 점진적으로 64세로 연장하고, 연금을 100% 수령하기 위해 기여해야 하는 기간을 기존 42년에서 2027년까지 43년으로 늘렸다.

신민중전선은 이런 연금 개혁을 폐기하는 것은 물론 정년을 60세로 낮추겠다는 입장이다.

RN은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며 지난해 5월 법정 정년을 62세로 환원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이 집권하더라도 연금 개혁안 폐지는 우선순위가 아닐 것이라며 이 문제를 '후순위'로 미루겠다고 말했다.

물가고와 저임금 노동자 급증 속에 구매력과 임금도 중요한 이슈로 부상했다.

신민중전선은 최저 임금을 현재 월 1천398.69유로에서 1천600유로까지 올리고, 물가 상승률에 연동해 임금을 인상하겠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의 브뤼노 르메르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3월 근로자의 사회 보장 기여금을 부가가치세(TVA)로 전환해 실질 임금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RN은 고용주의 임금 인상을 장려하기 위해 임금 인상분이 10% 이내이고 급여가 최저 임금의 3배를 초과하지 않는 한에서 고용주 부담금을 면제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과세 역시 정당별 입장차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분야다.

현 정부는 지난해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5.5%에 달하는 상황에서도 "세금 인상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대신 정부 지출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반면 신민중전선은 고소득자에 세금을 더 물리고, 마크롱 대통령이 폐지한 부유세를 더 강화해 재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RN은 일반적인 세금 인상이나 부유층에 대한 세금 부과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대신 부동산에 대한 재산세를 금융 자산에 대한 재산세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격히 상승한 에너지 가격도 유권자들에겐 중요한 문제다.

신민중전선은 내달 1일로 예정된 가스 가격 인상을 취소하고 에너지 가격을 동결할 것을 제안한다.

르메르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번 주 정부 에너지 정책의 결과로 전기 요금이 내년 2월까지 10∼15%까지 떨어뜨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RN은 프랑스 내 생산량만을 기준으로 에너지 가격을 책정하면 가정집 전기 요금을 지금보다 30∼40%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프랑스가 유럽연합(EU)의 단일 에너지 시장에 속해 있는 데다, 에너지 가격이 세계 시장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이 공약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는 실업 보험 개혁도 좌우 양측에서 공격받고 있다.

마크롱 정부는 실업 급여 수령 조건을 까다롭게 하고 보상 기간도 줄이는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즉 현재는 실직 전 2년 동안 6개월을 근무하면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으나, 정부는 이를 20개월 동안 8개월 근무 조건으로 바꾸려 한다.

아울러 53세 미만 실업자에 대한 최대 보장 기간을 현재의 18개월에서 57세 미만 실업자를 상대로 15개월로 단축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에 대해 신민중전선과 RN 모두 반대하고 있다.

이민 문제는 정당 간 노선이 명확히 드러나는 주요 이슈 중 하나다.

마크롱 정부는 지난 연말부터 올해 초 사이 이민 문턱을 높이는 대신 인력이 부족한 직종에 종사하는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특별 체류를 허가하는 내용 등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신민중전선은 이 법을 폐지하고, 외국인 근로자나 학생, 취학 아동의 부모에게 체류 허가를 내주자고 제안한다. 아울러 기후 난민 지위도 신설하자고 주장한다.

RN의 바르델라 대표는 총리가 될 경우 이민 및 국경 통제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몇 주 안에 외국인 무슬림 범죄자의 추방을 용이하게 하는 이민법안을 제출하고, 무엇보다 속지주의를 폐지할 것"이라며 "프랑스가 더는 통제되지 않은 대량 이민의 나라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RN은 불법 이민자에 대한 국가 의료 지원 폐지, EU와 프랑스 차원의 국경 통제 강화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현재 신민중전선과 RN의 지지율에 밀리고 있는 마크롱 대통령은 전날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린 이탈리아에서 기자들에게 "두 진영의 공약은 프랑스 경제에 매우 큰 위험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두 극단 세력이 책임 윤리의 틀 내에서 작동하지 않는 경제 공약을 내놓고, 재정 마련 방안도 없는 선물을 약속하고 있다"며 "그들은 정부를 운영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비난했다.

전날 프랑스 주간지 르푸앙의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 기관 클러스터17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RN을 지지하겠다는 응답자는 29.5%, 신민중전선을 지지하겠다는 응답자는 28.5%에 달했다.

반면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여당 르네상스와 그 연대 세력 지지 응답 비율은 18%, 당 대표의 극우 연대 결정으로 내홍을 겪는 우파 공화당 지지 응답은 7%에 그쳤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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