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르포] "우파 부패척결 6년 더" vs "치안 팽개친 좌파 심판"

입력 2024-05-30 09:43
[멕시코 르포] "우파 부패척결 6년 더" vs "치안 팽개친 좌파 심판"

대선 나흘 앞두고 선거운동 종료…200년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 눈앞

與 셰인바움 지지자 "변혁 정책 계속돼야"…野 갈베스 지지자 "정부 거짓말 지긋지긋"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한복판에 있는 예술궁전(팔라시오 데 베야스 아르테스·Palacio de bellas artes)은 역사 지구로 불리는 이 일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힌다.

기자는 내달 2일(현지시간) 대선을 나흘 앞둔 29일 이곳을 찾았다.

평소에도 시민과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이 건물 앞은 멕시코 집권당 상징인 자주색 깃발을 든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좌파 성향 여당인 국가재생운동(MORENA·모레나) 지지자들은 1934년 완공돼 올해로 90주년을 맞은 예술궁전 앞에서 기대감에 찬 얼굴로 대통령궁 앞 소칼로 광장까지 행진했다.

변호사 에두아르도 라몬(34) 씨는 "예술궁전이 지어진 이래 중요한 자리는 거의 늘 상대방(우파) 차지였다"고 80년 넘는 우파 집권 역사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며 "이제 세상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22만㎢) 9배가량 면적(197만㎢)에, 인구가 1억3천만명인 멕시코에서 이번 대선은 현지 언론과 정치 평론가들 사이에서 '승부의 추가 일찍 기울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여당 지지세 결집이 확연했다.

멕시코시티 시장 출신 클라우디아 셰인바움(61) 후보는 본격적인 유세 전부터 상대 후보들을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압도하면서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멕시코주 지역 모레나 여성위원회 간부라는 클라라(45) 씨는 "멕시코 유권자는 6년 전인 2018년, 사실상 처음으로 우리에게 정권을 맡겼다"며 "멕시코는 그때부터 변화를 시작했고, 우리는 그 뜻에 따라 계속 변화할 수 있도록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은 셰인바움 후보 개인에 대한 지지를 넘어 여당에 정권을 더 맡겨야 한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졌다.

다른 여당 지지자 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악사카(와하까)에서 온 호르헤 시세네로스(45) 가족은 "현 정부는 국민을 먼저 생각한 유일한 정부"라며 "극심한 우파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선 6년으론 부족하다"고 역설했다.

이는 임기 말임에도 60% 안팎의 긍정 평가를 받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70) 대통령의 높은 인기와도 맞닿아 있다.

'독립(1810년), 헌법 제정 및 개혁(1824년), 혁명(1910년)'에 이은 4차 변혁을 주창하며 2018년 야심 찬 좌파 프로젝트를 시작한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장장 89년간 이어진 우파 중심 국가 체질을 바꿔 나갔다.

매년 20% 안팎에 이르는 최저임금 인상과 이에 따른 실질 구매력 향상, 빈곤층 500만명 감소, 완만한 속도의 개혁을 통한 기업 반발 최소화 등은 그의 반대자들조차 인정하는 성과라고 BBC 스페인어판이 보도하기도 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특히 일요일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아침 2∼3시간씩 진행하는 정례 기자회견을 통해 6년 내내 여론을 사실상 주도했다. 언론의 비판성 기사에 "내겐 다른 정보가 있다"며 주도권을 선점하는 건 그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다.



공식 선거운동 종료일인 이날도 여당 유세장 주변엔 인형, 사진, 티셔츠, 우산 등 로페스 오브라도르 '굿즈'가 넘쳐났다.

로페스 오브라도르를 정치적 후견인으로 여기는 셰인바움 후보는 이날 캠페인 마무리 연설에서 "가진 것이 가장 적었던 정직한 우리의 이웃을 도울 때, 사회 정의가 실현되고 모든 영역에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게 (현 정부에서) 입증됐다"며 "저 역시 정직한 정부를 이끌 것"이라고 승리를 자신했다.



셰인바움의 가장 큰 경쟁자인 보수우파 연합의 소치틀 갈베스(61) 후보는 유세 마지막 장소로 미국과 인접한 '산업도시' 몬테레이를 선택했다.

중도좌파 성향 민주혁명당(PRD)까지 포섭해 '빅텐트'를 꾸린 갈베스 후보의 지지자들은 '총알 대신 포옹'이라는 현 정부 치안 정책과 애매모호한 이민자 대응을 힐난하며 정권 교체를 희망했다.



우파 제도혁명당(PRI) 멕시코시티 당사 앞에서 만난 마리아 마리아(56) 씨는 "좌파 정부 거짓말은 지긋지긋하다"며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잇따라 피살되는 것만 봐도 현 상황이 어떤지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갈베스 후보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생중계된 연설에서 "멕시코 주민들에게 가족 안전보다 더 중요한 우선순위는 없을 것"이라며 "준비되고 용감한 제게 힘을 실어 달라"고 호소했다.

두 후보 중 누가 당선되든 멕시코는 200년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을 배출하게 된다. 이는 북미 주변국인 미국이나 캐나다보다도 먼저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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